<7> 울산민주화의 역사(7) 노동운동의 메카 - 기회의 땅 울산

울산포스트 | 기사입력 2021/02/12 [11:09]

<7> 울산민주화의 역사(7) 노동운동의 메카 - 기회의 땅 울산

울산포스트 | 입력 : 2021/02/12 [11:09]

 <7> 울산민주화의 역사(7) 노동운동의 메카 - 기회의 땅 울산   

왜냐하면 그동안 수차례 선거사무실이 괴한에게 습격당했고 선거운동원 폭행과 기물이 파손되었고, 거리 유세를 나갔다가 중앙시장 상가에서 후보자가 상인들과 인사를 하던 중에도 집권당의 선거 운동원들에게 포위당하고 선거 유인물을 탈취 당했으며 번번이 선거운동을 못하도록 위협을 받았어도, 언론은 연락을 받고도 못 들은 척, 이를 취재조차 제대로 않았는가 하면 애써 이를 외면해 왔으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보도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거전의 관심을 엉뚱한 데로 돌리려는 듯 민정당의 거물 정객 김호가 출마한 경남 정치1번지 중구 대신에 남구나 울주군, 동구의 선거전을 집중 취재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었던 형편이었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울산 방어진의 지도를 바꾼 현대조선소의 창업주의 아들 정몽의 13대 동구 국회의원 선거와 특허청장 출신의 차수가 출마한 남구 선거전에 모든 언론들이 포커스를 맞추며 취재에 열중하기 시잣했다. 이제 관권금권 선거가 활개치며 폭력선거마저 난무하든 그야말로 무법천지의 어지러운 선거전이 도처에서 벌어졌었다. 신공화당 중앙당에서는 마침 13대 선거 후 전국적인 부정선거 사례를 수집하던 중에 특별히 울산중구가 특별조사 대상 지역구로 지정되어 중앙당 신일 부정선거 조사단장과 사무차장이 내려왔다. 사무실에서 이들 일행을 맞이한 이철이 강력하게 제안을 한다.

 

  <신단장님 무더기투표가 쏟아졌던 KBS 보도 자료와 부재자투표함 사전 개봉뿐만 아니라 그동안 지구당사무실이 수차 괴한의 침범으로 기물이 파손되고 당원이 폭행을 당한 사건만으로도 반드시 부정선거 무효소송을 해야 하겠습니다. 중앙당에서도 좀 도와주십시오.>

 

  <아 글쎄 김호는 나와 서울법대 동기동창인데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구먼. 충분히 무슨 말인지 그 뜻은 알겠습니다만, 내 과거 판사 시절에 선거소송을 맡아봐서 알지만 해방 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선거소송에 승소한 예를 찾아 볼 수 없어요. 그리고 그 비용도 엄청난데. 우리당에서 지금 이 비용을 감당 할 형편이 안 됩니다.>

 

  옆에서 당원 김대수가 끼어들며 이철의 말을 거들며 한 마디 한다.

 

  <이번 선거는 분명히 우리가 이긴 선거인데 왜 그냥 둔단 말입니까? 소송하면 재선거하여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글쎄 우리가 서울에 올라가면 총재님께 충분히 말씀 드려보겠습니다.>하고 서울에서 너무 먼 거리를 달려 왔는데다 밤이 깊었으니 숙소를 잡으러 태화호텔로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작별 인사를 고한다.

 

참으로 서글픈 이야기 허망한 결론으로 부정선거에 대한 중앙당에 걸었던 한가닥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다.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사법부는 물론이요 대법원장까지 국회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나 살피는 교활 야비한 짓을 하는 한 

유권무죄 무권유죄 무전유죄 유전의 나라라는 오명은 영원히 이당에서 씻을 수 없을 듯...

  다음날 아침 이철은 KBS를 방문하여 강 기자를 찾았으나 만날 수가 없었고 대신 보도부장을 만나

 

  <어제 저녁 뉴스시간에 보도했던 무더기투표 화면을 좀 녹화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정중하면서도 결연히 요청을 하자 별 반응이 없다. 그러나 같은 말을 수차례 되풀이하며 간청도 해보고 강요도 해 본다.

 

  <참 잘 싸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방송 내규 상 절대 보도화면을 외부로 유출시킬 수 없습니다.>하고 거절한다.  처음에는 공손하게 들어줄듯 하더니만 갑자기 누구와 통화를 끝내드니 기고만장한 태도로 돌변한 방송 책임자는 최고의 위세를 부리는며 권위를 내세우고 이철의 부탁을 단호히 거절했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과 사전검열제에 저항하던 중앙의 일간지 기자들이 해직을 당하고 혹은 테러를 당하거나 감옥으로 끌려가기도 했을 때도 지방의 언론사들은 오히려 이런 시대적 흐름을 타고 이 제도를 잘 이용하여 급작스럽게 커져, 정권의 시녀 역할을 잘 감당하며 권력의 맛을 즐기고 호시절을 보낸 언론사도 적잖다. 또 지방 주재 기자들은 그동안 바른 말 하고 잘못을 감시하던 사회의 목탁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으니, 때를 만난 듯 온갖 사회악을 조장하고 여론을 조작하며 언론이란 미명 하에 억압받은 민중의 소리를 외면하고 온갖 부조리를 양산하였으니 이런 기자들의 행패는 노태우 정권으로 이전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었다.

 

  13대 선거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울산에는 KBSMBC 방송국이 있었고 일부 중앙 일간지와 부산일보, 경남일보 주재기자들이 지방 언론을 취재하고 있었지만 무언가 조심스럽게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실리를 챙겼다. 그야말로 언론의 사명을 망각한 채 생색용으로 한정된 범위 내에서 시민이 못내 궁금해 하는 것을 조금씩 보도하는데 그치고 있었다.

 

<수많은 오기자 사건들>

 

  중앙경제신문 오흥근기자가 백주 대로에서 테러를 당했다는 보도가 신문의 한 귀퉁이에 자그맣게 그러나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유비통신과 함께 보도되기 시작하더니만 20일 만에야 결국 국민의 여론에 쫓기다 못해 사건 전모가 드러났다.

 

  즉 육군 소령과 하사관 2명이 출근길의 오기자를 동네 입구에서 피습하고 칼로 다리를 찔러 중상을 입혔다고 오늘 아침은 신문마다 대서특필되고 방송도 볼륨을 높이고 있다. 이 사건도 마치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군 사건의 수사과정과 흡사하다.

 

  처음에는 국민을 속이기 위해 사건을 은폐 조작했다가 당시 시신을 검진한 의사의 양심선언에서부터 여론에 쫓겨 사건이 확대 재수사되었으니, 오기자의 피습사건은 처음 강도나 불량배의 소행으로 적당히 얼버무려 버리려다가 국군의 소장파 장군들이 군수뇌부에 육군의 명예를 걸고 진상을 규명하자는 강력한 진언이 참작되어 결국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여 민주화의 도정에 꽃같이 쓰러져간 수많은 청년학생들의 함성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귓전을 울리는데도 군사독재의 독버섯은 우리 정치, 사회, 문화, 곳곳에서 성장하고 아직 그 위세가 꺾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위의 울산 KBS 강철구기자는 물론이거니와 오흥근기자는 바로 아직도 꺾이지 않고 고개를 쳐들고 있는 군사문화(월간) 중앙지에 개제한 것이 화근이 되어 대명천지 서울 장안에서 그것도 자기 동네 입구에서 현역 군인에게 칼침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오기자와 같이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고도 소리 없이 그냥 죽은 듯 지내오고 있는 수많은 오흥근 케이스의 테러가 엄존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중요시 해야만 한다.

 

  민주당 창당대회에 각목부대를 진두지휘한 용팔이나 그리고 우리마당 피습사건 등 크고작은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철도 지난 13대 총선을 전후하여 3차례나 이름 모를 청년들로부터 한밤중에  선거 사무실이 테러를 당했다. 사무실의 모든 서류와 집기는 박살이 나고 숙직하던 사람까지 비참한 폭행을 당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자행되어도 경찰에서는 한결같이 증언내용이 불명확하고 아직도 범인의 신분조차 확인할 수가 없다고 하지 않던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낸 지문 및 혈액조사 결과가 확실하다고 하는데도 사건 후 구십여 일이 경과 할 때까지도 아무런 수사상의 진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다 나중에 가서 수사가 불가능했다고 흐지부지 넘겨버릴 것이다.

 

  현대 노조원연쇄테러사건의 공권력 개입과 그 진상은 어떠하며,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이 갑자기 행방불명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진실이 밝혀지는 사회에는 그 사건이 아무리 흉악 범죄라도 일벌백계에 의한 척결로 밝은 미래와 건전한 사회가 약속되지만 비록 미미한 사건이라도 조작 은폐되는 사회는 항상 썩은 냄새가 더욱 주위에 악취를 풍기고 계속 유언비어와 함께 확산해 나아가게 된다.

 

  우리 모두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참 용기를 가지고 어떤 곳에서라도 진실을 밝혀 나가야겠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역사의 순리에 따라 모든 진실은 언제고 밝혀지고야 마는 법, 참빛이 어둠을 물리칠 때가 곧 이땅에 민주와 정의가 실현되어 향기로운 민주화(民 主)가 꽃피는 날이다.

 

 

한편 울산의 공해지역 이주민 대책 요구와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은 그 어느 때 보다 거세었고 조상 대대로 살기 좋고 인심 좋은 땅 울산에서 삶을 이어온 농어민들은 삶의 터전이 공단부지와 신항만 부지로 강제수용되어, 생활의 터전을 잃고 이주해야만 하기에 고향 잃은 이주민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투쟁의지는 더세었다.

 

그 첫 집회가 울산성당에서 열리자 투쟁의 중심에는 기독교 목회자가 주축을 이룬 '울산사회선교회'가 있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열혈의 청년들과 '심완'을 비롯한 일부 울산의 골수 야당 정치인들도 합세했다. 잠시후 모임이 끝나고 시위에 나서려는 집회 참가 시민들을 경찰이 출입구를 막으며 원천봉쇄작전을 펼치기 시작 했다.

 

현대조선소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조건에 최저 임금보장 하라고 외치며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너무나 인간적인 절규도 현대 중공업을 중심으로 하여 현대중전기, 자동차등 계열사로 확대되어 점차 투쟁의 열기를 더하여 갔다.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에 나서며 시위를 벌리고 조업을 중단한 채 회사 측과 수 없이 부딪치자 드디어 서울 본사에서 '정주영 회장'이 급히 울산 현대조선소로 내려와 처음엔 수 천 명의 시위노동자들과의 직접 대화가 어려운 상황이라 강당같이 생긴 대형 작업장 건물 내에서 일정 기준을 정하여 대표들을 들어오게 한 다음 얘기를 시작하려했다. 그러나 건물 밖의 수천 명 시위자들은 밀실 야합 반대를 외치며 정회장이 밖으로 나와서 전체를 상대로 얘기할 것을 외쳐대었다. 정회장이 밖으로 나와 다시 영빈관 앞 넓은 잔디 광장 급조된 연단에서 수만 명의 노동자와 관리직 직원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한다.

 

<존경하는 현대조선소 근로자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이 울산 방어진 허허벌판 바닷가에 돈도 기술도 부족한 가운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여러분들의 노력과 땀으로 오늘 이만큼한 조선소를 짓고 또 30만 톤의 첫 유조선을 건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이에 비해서 아직도 너무 건강하고 패기에 넘치는 정회장이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고 연설을 계속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한쪽 구석 철판더미 위에 몰려있던 용접공들 중에 누군가가 소리친다.

 

<야 다 때리 치아라. 우리는 배고파서 일 못하겠다. 이라다가 또 족장판에서 떨어져 죽으면 개값 물어주고 초상치면 그만아이가!>

 

일시에 웅성거리던 무리들이

 

<옳소! 옳소!> 하며 함성을 지르고 정회장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황급히 마련한 마이크와 스피커 성능도 문제였지만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서 여기저기서 제가끔 구호와 함성, 야유를 외쳐대는 수 천 명 시위 노동자들과의 대화는 불가능해 졌다. 처음 몇 몇 군데서 산발적으로 동요가 시작되더니 조선소 광장에 모였던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하나의 인간 장벽을 이루며 정회장을 향해 조여들기 시작한다.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정회장은 대책 없이 수 천 명의 시위 노동자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위기감에 겁에 질려 정회장을 보호하려는 몇 명의 조선소 간부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큰 파도 앞의 갈대와 같이 역부족이었다.이제는 현대 조선소의 노사 대화보다, 당시 이미 70대 중반에 들어선 노구라 할 수 있는 정회장 신변의 안전이 전 국민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중요 TV와 라디오가 상황을 생중계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회장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서서히 뒤쪽으로 몸을 피했지만 자신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감히 누구도 이 현대왕국의 왕회장에게 감히 이런 도전과 돌발사태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이라 회사 경비들과 사복 경찰들이 집중하여 정회장을 보호하려 해도 막무가내이며 일촉즉발 어떤 사태가 발생 할지도 모를 위험한 순간이다.

 

정회장이 회사 담벼락 나무 아래로 피신했을 때 한 늙은 노동자가 나서서 정회장 앞을 자신의 몸으로 가로막으며 흥분하여 밀려오는 젊은 노동자들에게

 

<이라면 안 된다. 이라면 우리가 진다. 우리는 깡패가 아니다 현대 직원이지 폭력배가 아니다.>

 

계속 소리 소리치며 행동을 자제할 것을 주문한다. 주변의 동조하는 일군의 동료들도 차츰 무리지어 모여들기 시작하자 다시 힘을 합쳐 모두가 자중할 것을 노동자 동지들을 향해 간곡히 권유하며 서서히 돌발사태를 잠재우기 시작했다.

 

이런 사태가 거의 4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다행히 시위 노동자들의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틈을 타서, 이 위기의 절체절명의 순간을 재빨리 간파한 경비대장과 사색이 다된 회사간부들 그리고 사복경관들이 민첩하게 정회장을 호위하여 뒷문으로 빠져나가는데 성공했다.

 

현대의 왕회장이 성난 노동자들의 함성에 밀려나자 다시 노사가 갈려져 싸우고 드디어 경찰이 본격적으로 개입하여 나서면서 삽시간에 방어진 일대가 투석전과 폭력사태로 아수라장이 되어 방어진 전하 파출소가 박살이 나버렸다.

 

정회장은 현장을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다.정회장이 아무리 건강해도 그 연세에 4시간 동안이나 선채로 흥분한 시위 노동자들에게 둘러싸여 아수라장의 분위기 속에 신변의 위험을 느끼며 갇혀 있었으니 심신이 탈진 상태일거다. 아마 어디 병원에라도 가서 며칠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할 거야.”뉴스를 지켜 본 많은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겠지만 특히 전경련 임원들은 많은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예상을 빗나가는 완전한 기우였다. 상경한 정회장은 그날 저녁 전경련 명예회장 자격으로 당시 현직 회장이었던 구자경 회장을 비롯하여 전경련 사무국 임원회를 소집하여 대책논의에 들어갔다. 그의 심신의 상태와 표정은 바로 몇 시간 전 그런 일을 겪었던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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