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민주화의 역사-에필로그(EPILOGUE) (9) '국제어린이축제와 한 교사의 양심선언'

울산포스트 | 기사입력 2021/02/27 [07:55]

울산민주화의 역사-에필로그(EPILOGUE) (9) '국제어린이축제와 한 교사의 양심선언'

울산포스트 | 입력 : 2021/02/27 [07:55]

    이쯤에서 내 일생 처음 큰 마음먹고 써 본 처녀작 울산의 정치비화(政秘治話) 역사소설은 잠깐 붓을 멈추고 변모하는 세상 물정과 인심을 살펴보며 한숨 쉬어 가야겠다. 나는 직업 정치인이 아니다. 단지 그 시대에 내가 존재했음으로 거역할 수 없는 부름에 순응한 소명의식으로 담대히 나섰기에 어쩌다 민주화의 기수가 되었고 투사가 되었다. 내가 지난 시대의 체험했던 생생한 울산 민주화의 역사적 진실을 기록한 목적은 우리가 소망하는 보다 나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작은 밀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스스로는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의 확장을 위한 창의적 도구가 되기 위하여 쉼 없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해 나아가기 위함이다.팩션(FACTION) 쓰기를 잠시 멈출 뿐이지 영원히 침묵하고 또한 내가 살아 있음을 여기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마치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려고 하루 전 날 산 아래 마을에서 잠을 자고 긴 휴식을 취한 후에 새벽부터 험준한 산맥을 힘들여 오르다, 저만큼 한 봉우리를 넘으니 또 더 높은 봉우리를 만나게 되고 이제 최정상 천왕봉을 정복할 때까지 새로운 힘을 충전하기 위해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 것에 불과하다.

사실상 지금 나의 체험어린 울산 민주화의 증언에다 약간의 가명(허구)까지 가미 된 정치역사이야기(fact+fiction)를 더 이상 전개하려니 현실적 문제점에 부딪치기도 한다. 이제부터 펼쳐질 이야기들 중에는 과거 나와 한 지붕 아래서 동거하며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라는 간판 아래에서 만나, 비록 소속은 달랐지만 민주노동운동의 메카요, 동시에 기회의 땅이었던 울산의 민주화 운동의 일꾼들이 지금은 제각기 각개각층 요직을 맡아 현실 정치의 주인공이 되어있다.

과거 짓밟히고 탄압받던 인물들이 지금은 참으로 정치하기 좋은 계절이라, 시대적 대세에 편성하여 각광을 받으며 현실 정치에 참여하거나 각개 각 분야에서 지도적인 인사로 활약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음 시작했을 때의 그 고난의 시절과 현실은 너무나 많은 변화와 괴리가 있기에 지금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쓰기에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기다리자. 그렇다고 은혜를 잊고 배은망덕한 자들을 탓할 마음도 없으며 아직도 험난하고 더 높은 산맥을 넘어야 할 미래를 예측하며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울산정치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한편의 정치 소설 에필로그 속에 이 사실만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어느 한 양심적인 교사의 이야기와 내 소년의 꿈이었던 울산공단 건설 참여 후 중동 동남아 해외건설 현장에서 귀향하자 당시 울산공업도시에서 절실했던 외국어교육을 시작하며 필생의 비영리사업이자 평생교육 사업의 일환었던 국제어린이축제이야기를 쓰고 끝을 맺어야겠다. 지금은 이 땅에서 멀리 저승으로 떠나간 너무나 양심적인 한 착한 초등학교 교사의 진실부터 밝혀야만 하겠다.

 

그는 병영초등학교에서 오래 근무했는데 자신의 모교(울산초등에서 3학년 때 전학)이기도 한 이곳에서 6학년 주임 교사로 있으면서 특히 작은 체구에도 이 학교 교기인 씨름부를 맡아 씨름의 고장 울산 병영 우성열 장사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했으며 동료 교사들은 물론 병영 지역의 유지들과 학부형으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았다.

 

 그후 잠시 울산 주전의 한 초등학교 분교장으로 나가 어린이들과 동심 속에 살다가 어느 날 친구집 개업식에 들러 한 잔 술을 들고 날이 어두워진 후에 집에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그가 병영아파트 최상층에 살고 있었으므로 평소 곧잘 문이 닫혀 있으면 그렇게 하듯 옥상에서 창문을 타고 내려오다가 이날은 불행하게도 그만 실족하여 8층 바닥 아래로 떨어져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너무나 갑작스런 변고로 도저히 믿을 수도 이해 할 수도 없었던 것은 당시 집안에는 부인과 아이들이 있었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참담한 일이 벌어졌는지 도저히 믿기지도 않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지금은 이미 이승을 떠나버린 한 아름다운 젊은 교사의 양심선언만을 꼭 기록하고자 한다.

1988134월 총선도 끝이 나고 어느덧 7 무더운 여름이 한창 기승을 부릴 즈음에 태화강변에 위치한 성남동 내 사무실로 고향의 후배라면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아주 정겹고 가냘픈 남자의 음성이 들린다.

 

<이 선배님 저는 울산 초등학교의 후배 되는 병영초등교사 백광학이라고 합니다. 지난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중구 개표요원이었습니다. 울산초등학교 개표장에서 선배님이 무더기 투표지를 보고 항의하며 개표장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보았고 또 선거관리위원이었던 고등학교 학교장이 일개 집권 여당 사무국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개표를 1시간이나 중단시켰으며 또 저의 제일중학교 후배이기도 한 집권 민정당 조직부장이라는 놈이 선배님께 욕하며 대드는 장면도 보고 매우 분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진작 연락  드리고 싶었는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서 미루어 오다가 오늘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선배님 이야기를 하다가 다같이 한번 만나 뵙기로 하고 감히 선배님께 전화 드리게 되었습니다.>

<,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반갑소. 언제 한번 만납시다. 우리 성남동 사무실로 꼭 한번 들려주십시오.>

<네 그리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꼭 한번 뵙고 싶은데요. 지금 이 자리에는 모두 울산초등학교 동기들이 모여 있는데, 이 선배님을 평소 존경하는 후배들이 모여 있으니 우리가 그곳으로 찾아뵙든지 아니면 지금 이리로 좀 오실 수가 있으시면 더 좋겠습니다.><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지요. 거기가 어디쯤 입니까?>

<예 여기는 로얄예식장 건너편에 바로 태화시장으로 내려가는 비탈진 길옆에 있는 태화루라는 식당입니다.>

<좋습니다. 마침 퇴근 시간이 다 되었고 그곳은 태화동 내 집 근방이니, 내가 그곳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첫 테화루 식당에서 첫 만남이 이루어진 후로 우리들 아니 그 중에서도 특별히 나와 백 선생은 거의 일주일이 멀다하고 자주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자주 그의 어머니가 홀로 계시는 병영 집에도 가고 때로는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웅변학원과 웅변대회 행사장에도 갔는데 그때 심사위원으로 만났던 오규석 병영초등학교 선선은 후일 고향 기장 군수가 되었고 또 살림집이 있는 남외동 아파트에도 백선생 부부의 초대로 찾아가며 서로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

그는 나와 첫 만나는 날부터, 나에게 당시 많은 공무원들과 개표요원으로 참가하면서 무더기 투표가 쏟아질 때 나와 함께 부정선거를 소리치며 만천하에 고발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매우 후회하면서 함께 했던 동료 선거 종사원들처럼 자신의 용기 없음을 미안해 하고 분명히 무더기 투표를 지적했던 선배님의 주장이 사실이며 옳았음을 수차 강조하고 확인하며 다른 사람들과 동석하는 자리에서도 자주 이 사실을 증언하며 거듭 양심선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후일 각종 모임에서나 등산 친묵회 등에서 만난 선거 개표 요원이었던 공무원들도 이 같은 양심선언을 하는가 하며 곧잘 옛 이야기인 듯 비슷한 증언하기도 했다.

또 그는 항상 아버지가 근무했던 옛날 울산교 바로 앞 성냥공장 맞은편에 위치한 외딴 한국전력 관사에 살면서 여름철이면 동네 아이들과 울산극장 뒤편 연못에서 잠자리 잡던 재미난 이야기와 한전 출장소에 책임자로 일하시던 전기 기술자였던 아버지 자랑을 자주 하곤 했다. 당시 그의 남동생이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병영 동사무소 앞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전업사를 열고 있었다.

필자가 이 글을 잠시 멈추는 말미에 꼭 그의 이야기를 실은 까닭은 그래도 내가 8813대 국회에 출마한 이후 고향 민주화 추진운동의 투사요 기수로써 고난의 정치 노정에서 수많은 울산 읍내의 선후배들이 있고, 나도 전직 교사 출신이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을 사귀고 만났지만 그래도 그 많은 당시 울산초등학교 개표장에 선거관리위원장인 현직 판사를 위시한 교장, 교사, 공무원들이 꽉 들어찬 수많은 개표 요원 중에 그만큼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으려고 고민하면서 끝내 용기 있게 제일 처음 진실을 고백한 사람이 백 선생 단 한사람밖엔 없었다는 사실이다.

세월이 흐르면 어떤 때는 진실도 뭍혀지고 혹 잊혀져가기도 하지만 그때 그 자리를 지키며 제각기 맡겨진 임무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만이 진실을 증언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는 법이라고 그래야 우리가 역사의 주인이라 학생들 앞에서 뜨뜻이 말 할 수 있으며 새역사 창조의 견인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만난 그날 밤 그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유일한 후배이었기에 이미 그는 죽어서 10년 넘어 나 먼저 이 땅을 하직했지만 내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한 아름다운 사람으로 내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기에 꼭 그와의 만남과 인연을 이 픽션의 말미에 기록으로 남기고 이 글을 맺으려 한다.

백선생 그대는 작은 거인이요,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소. 먼 훗날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라고 묻거든 "한 시대의 진실을 말하는 증언자였노라!"고 대답하리라. 나의 뇌리애서 영원한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국제어린이축제(The International Children's Festival)’

 

오늘 하루만이라도 어린이들에게 완벽한 기쁨을 전해주는 심부름꾼이 되고져 합니다 . 이제 세계 제일의 공업도시이며 산업수도로 발전하면서 점차 국제도시화 되어 가는 내 고향 울산의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긍지를 심어주고 싶습니다. 울산공단 건설의 주역이 되겠다는 소년의 꿈을 이루었고 이어서 멀리 해외건설현장으로 떠나 열사의 땅에서 땀 흘리며 청춘을 열정을 불사르며 고향 하늘을 그리다, 1980년 귀향한 이후 울산 공업도시에서 가장 절실했던 외국어교육을 시작하며 개최했던 국제어린이축제는 세계 32 여 개국 어린이들이 한데 어울려 춤추고 노래 하며 미래의 무한한 꿈과 정서를함양 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바쳤습니다 .1986 년 제 1 회 국제어린이 축제를 이 곳 울산 산업수도에서 시작한 이래 노사 분규로인해 몇 해 쉰 적도 있지만 , 세계 32개국에서 온 어린이들의 전통 춤과 음악 뮤지컬과태권무를 통해 우리는 귀중한 국제 친선과 교육적 경험을 보다 좋은 교육 환경을 개선해 왔습니다.

 

1986년부터 시작된 이 국제행사가 당시 열악했던 우리 울산의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수많은 외국인 가족들에게 보다 살기 좋고 아름다운 문화교육도시 울산을 선양하는데, 해가 가고 축제가 거듭 될수록 더 우수한 작품과 풍성한 무대로 학생과 학부모가 함게 즐기며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는 세계화 시대의 실용교육의 모델로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

  오월의 초록이 아름다운 까닭은 온 누리에 사랑과 새생명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가 온 뒤 메마른 세상을 촉촉히 적셔주는 초록의 물결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인간의 무모한 난 개발로 무참히 짓밟히고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다시 녹색 사랑으로 채워주는 우리들의 봄은 역시 꽃보다 아름다운 것 같다.

이 땅의 어린이들이 오늘도 평화롭고 힘차게 뛰어놀며, 강물속의 물고기들은 은빛 나래를 치며 유영하고, 아이들은 푸른 초장과 쉴만한 강가에 모여 앉아 모래성을 쌓고 꿈과 희망이 넘치는 유년시대를 기쁘게 맞이하고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그것이 모두 꿈같은 이야기라고 믿으려들지 않는 자녀들의 교실붕괴나 교육 혼란의 현장에서 위기감까지 느끼게 된다.

온종일 TVPC앞에 앉아 무엇인가 정신 없이 두들겨 대는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움과 측은함을 느끼며 전율하게 된다. 과연 어른들은 지금 우리들의 미래 그 꿈나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육체와 정신이 건전하게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양분을 공급하고 정서적 안정과 꿈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환경과 정성을 쏟고 있는가. 오히려 그들의 희망과 용기를 짓밟고 자유와 기쁨을 박탈하고 구속과 공포와 자주와 상실감만 심어주지 않는지 자못 걱정스럽고 두렵기만 하다.

새 천년 지구촌의 미래를 열어갈 우리들의 꿈나무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우리 어른들은 부단히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노력해 왔다. 새계화의 시대 이 지구촌에서 삶의 질을 높이며 잘 살아가고, 세계인과의 생존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고 서로 더불어 화목하게 함께 협력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세계인이 되도록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이들에게 5월은 푸르고 기쁨과 희망이 넘치는 꽃보다 아름다운 달이 되어야 한다. 자라나는 꿈나무, 우리들의 희망, 미래에 열매를 맺을 튼실한 국가의 기둥을 잘 키워나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일찍이 1986년부터 내 고향 울산공업도시의 미래의 충실한 열

를 거두기 위해 울산에 거주하는 세계 20개국 어린이에게 울산은 공해백화점이라고도 하는 나쁜 물과 인체에 해로운 공장굴뚝의 연기 같은 공해만을 주입시키는 공포 분위기에서 탈피하여 국제공업도시의 특색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마음껏 뽐내고 또 교육환경을 세계에 선양 할 수있는 울산만의 독창적인 국제행사를 마련하게 되었다.

울산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고 낡은 배를 수리하며, 자동차나 석유화학공장의 제품을 만들고 수입하려고 외국의 수많은 나라에서 온 기술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 외국의 어린이들과 우리 울산의 어린이들이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또 전통의상을 자랑하며 서로의 문화와 언어를 교류하며 이해하고 즐기는 놀라운 체험의 한마당 잔치가 해마다 어린이달에 열린다. 1986년 첫해와 이듬해까지는 KBS와 공동주최로 전국에 녹화중계방송까지 해서 많은 박수를 받았고, 그 후 각계각층의 관심 있는 이들의 협력으로 지금까지 울산의 전통있는 어린이 축제로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전국 노동운동의 메카인 울산에서 한동안 노사분규가 격렬하게 일어나서 외국인이 모두 철수했던 몇해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국제어린이 축제를 열었기에 벌써 125회 째를 맞이하게 된다. 찬란한 생명의 달, 희망의 달, 꿈과 사랑의 달 5월에 우리 어린이들은 더욱 힘차게 자라나 장차 이 나라 아니 이 세계의 주인이 되고 기둥이 될 것이다. 21C. 세계화 시대는 바로 이 어린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펼쳐나갈 아름답고 희망찬 시대가 될 것이다꿈과 희망을 가진 자만이 앞날의 무한한 가능성을 성취하게 되며, 항상 준비하는 자에게 승리의 영광이 찾아올 것이다.

세계 32개국에서 모인 어린이들이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며 국제친선을 도모하고 지구촌 한마당잔치를 내 고향 울산 산업수도에서 펼쳐 왔으니, 해를 거듭할수록 울산의 독창적이며 전통적인 어린이 축제가 자랑스럽다 학생들이 방과후 갈고 닦은 기량으로 자신의 소질을 계발함으로써 청소년 정서순화에 도움을 주고,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데 방향을 제시해주며, 나아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기능을  상호 비교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예술적 기량을 강화시키는데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되고 있다.

 

  이 국제어린이 축제는 비단 울산 거주 어린이들의 교육효과만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이곳을 찾는 수많은 외국인 학부모들에게 세계 32개국에서 모인 그들 자녀들의 공연을 선사함으로써 큰 기쁨을 안겨 주며, 울산을 대표하는 민간 외교관이 될 것이다. 이곳 울산에 세계 제일의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좋은 교육환경이 마련되었음을 대외에 알리는 기회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부터 국제감각을 튼튼히 익혀나가는 우리 울산의 꿈나무들은 장차 이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지도자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위정자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잘 믿으려들지 않는다. 사실이지 울산이 누구 덕에 살이가고 있는? 현대의 덕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렇다면 현대는 누구덕에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도 울산에 살며 열심히 일하는 저 외국인들과 오대양 육대주에 대한의 깃발을 나부끼며 선적 된 저 수출 덕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끼지 32번째의 국제어린이축제를 하는 동안에 사실상 현대의 사주이자 국회의원인 전몽 의원은 온갖 팜프렛 마다 얼굴을 내밀면서 현대외국인학교 120명 전교생이 참여하는 행사장에 언제 한번 얼굴이라도 비췄던가 아니면 축하의 말 한마디나 꽃 한 송이라도 보내준 적이 있었던가? 많은 이야기야 익히 들어 알긴 하지만은 그래도 오늘 울산이 현대 왕국이요 그가 국회의원이자 사주라면 이럴 수가 있겠는가? 그도 어린 시절이 있었겠지만 우리 울산의 꿈나무를 위해 이다지도 무심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국제어린이축제는 실망치 않고, 울산이 존재 하는 한 국제공업도시 울산이 존재 하는 한 영원히 존속 될 것이며, 지난 24번째 국제어린이축제를 통해 울산의 세계화와 우리 공산품의 국제경쟁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작은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자임해 왔음을 보람으로 알고 금후 전 시민의 성원과 사랑 속에 영원히 발전하고 지속되기를 소망한다.

 

산업수도 울산의 전통적인25회국제어린이잔치에 귀하와 온 가족을 초대합니다 .꼭 참석하셔서 더욱 흥겨운 잔치로 이끌어주시고 다문화가족과 세계 32 개국 새싹들에게도 한없는 기쁨과 희망을 선사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수도 다운 울산의 자랑스런 국내유일의 제25회국제어린이축제가 200명의 참여 32개국 어린 학생과 500여명의 국내외 학부모의 뜨거운 박수와 격려 속에 성대하게 열렸다. "55일은 한국의 전통적인 '어린이날'이라면 이제 11. 7(11회 때부터 55일에서 변경)일은 '국제어린이날'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지구촌의 다문화 시대를 여는 축사와 함께 이날 오후 3시부터 교육청 대강당에서 시작된 "25회국제어린이축제"에는 세계 32개국 어린이(현대외국인학교 30개국 + 다문화가족 15개국)의 춤과 노래 그리고 처용무, 뮤지칼, 가야금병창, 태권무등 다채롭고 화려한 무대가 펼쳐져 교육과 즐거움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던 국제문화교류와 친선의 한마당 큰 잔치였다.

오늘 제25회국제어린이축제에 참석하신 여러분 정말 반갑고 감사합니다.1986년부터 울산에서 매년 열린 국제어린이축제는 음악과 무용을 통한 어린이들의 행복한세계화 교육일 뿐만 아니라 , 자녀들의 공연을 보러온 학부형들의 마음도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산업수도 울산에서 1986년부터 어린이들에게 세계화의 비전을 심어주고 90여개국 50,000여명 외국인 근로자 가족이 활동하는 낙후된 울산의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산업수도 울산이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살기좋고 인심좋은 땅임을 세계에 선양하는 뜻으로 시작한 '국제어린이축제(The International Children's Festival)'는 벌써 25(주년)회를 맞이합니다.

 

지금까지 국제친선과 문화교류 교육환경 개선을 모토로 우리의 무대를 32개국 학생 100여명이 공부하는 현대외국인학교에만 치중했는데, 이젠 우리 울산에 거주하는 575011개국 다문화 가족들과 자녀들 에게도 관심을 기울려 더욱 무대를 넓혀야겠다는 일념으로 특히 금년에는 다문화 부부와 그 자녀들까지 참여하는 축제를 준비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우리가 보듬어야 하고 50100년 후에도 한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런 울산에 살도록 만드는 게 정말 소중한 가치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산업수도 울산에서 개최 된 '25회국제어린이축제(The 25th International Children's Festival)는 예년 보다 더 많은 나라 "32개국에서 온 어린이 160명 외 울산 초.중학생 100여명과 다문화 가족"이 출연한 국내 유일의 세계 어린이 행사로 자리 잡은 전통적인 어린이 국제행사로 국제친선과 교육 문화 교류를 통한 더욱 신명나고 뜻 깊은 행사를 치루었다.

 

이 축제는 지구촌 시대에 세계의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세계의 어린이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춤추며 노래하고 함게 즐기면서 우의를 돈독하하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국제화의 꿈을 꾸며 세계화를 생각하고 체험하게 된다.

 

 

 

울산포스트와 울산사회교육연구소는 1986년 부터 울산의 국제화시대를 대비하여 미래의 꿈나무인 울산의 어린이들과 울산에 거주하는 세계 32개국 어린이들(현대외국인학교 등 200여명 출연)과 가족을 위해 민속춤과 노래, 사물놀이, 오캐스트라, 뮤지칼등을 공연, 문화교류를 통해 국제친선을 도모하고 우리 교육환경의 우수성을 세계에 선양하는 국내 유일의 1-25' 국제어린이축제'를 울산광역시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 축제가 울산과 함께 영원히 성장 발전하기를 소망합니다. 끝으로 이 전통있는 25번째의 국제 어린이 축제의 즐거움을 여러분과 함께 골고루 나누고 싶습니다.

 

Invitation Letter

We invite you and your family to help us celebrate The 22nd International Children's Festival. Your attendence would bring our children much pleasure and pride. Thank you.Nov. 12 2015. pm. 3 :00 Jung-gu Arts CenterUlsan Institute of Social Education. ChairpersonThe Ulsanpost Publisher Charlese Lee

 

Opening Address

 

I would like to express my sincere welcome to children and parents gathered here today.

Since the 1st international children's festival began in 1986 here in Ulsan industrial complex, we have had memorable experience and demonstration through traditional folksongs, dances, musical, speeches and Taekwon-mu.we will take active part in global efforts to foster global citizenship.

Truely, it is love. History of the 22nd International Children's Festival(ICF) for the last 22 years is never short. Only love enables us to hold ICF for a long time. Love is patient and kind, and it never fails. Without the power of love, how could we continue it for 22 years.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We enforced to invite students at Hyundai English School from 32 countries on the stage until the last year, but this year we enlarged our stage through inviting the children of 5,750 multi-cultural families

 

I want to be a messenger to help the children have a pleasurable experience especially this day.Ulsan is one of the biggest industrial complexes of the world and annternational city where children are living with great pride and hopeToday they are getting together to dance and sing from 30 dif-ferent countries. .

These are not only practical education but pleased many foreigners who come to see their children's performance. I hope it will become an endless growing event with Ulsan city. Finally I wish to share with you our great pleasure in the 22nd international children's festival.

 

Chairperson, Charlese LeeUlsan institute of Social Education

 

 

 

독자여러분 그동안 부족한 저의 처녀작을 끝까지 읽어주시고 또 격려 해주신 점 무한 감사드립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여 울산의 정치비화 소설을 영광스럽게도 다시 쓸 그날이 올 때까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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