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1) "광주 국립 5.18 민주묘역과 망월동 시립묘지"

이한열 열사의 묘와 나란히 뭍힌 5. 17의 주역 박관현 열사의 가묘

울산포스트 | 기사입력 2020/05/15 [07:47]

광주에서 (1) "광주 국립 5.18 민주묘역과 망월동 시립묘지"

이한열 열사의 묘와 나란히 뭍힌 5. 17의 주역 박관현 열사의 가묘

울산포스트 | 입력 : 2020/05/15 [07:47]

 5. 18 최후의 민중항쟁지 (구)전남도청 맞은편 상무관은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과 집단 발포로 희생된 주검을 임시로 안치했던 곳이다. 5월29일 무력으로 진압한 계엄군은 구 도청 앞 상무관에 모셔져 있던 시신 126구를 청소차에 싣고 가 망원동 시립묘지(5.18구묘지)에 매장했다. 또한 당시 광주 시민들도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을  손수레에 싣고 이 곳 5. 18 구묘지에 뭍기도 했다.

  © 울산포스트



 

 

 광주사태라 불리우고 신군부의 탄압아래 민주화운동이 우리 정치 사회 전반에  엄격한 통제를 가하며 아직도  언론마저 검열을 받아가며 광주사태의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을 때, 이곳 망월동 묘지에 뭍힌 희생자들이 다시 민주 애국 투사로 재 평가를 받고 현 국립 5. 18 묘지에 뭍힐 때까지, 이한열 열사 옆에 나란히 뭍혔던 박관현 열사의 묘지는 민주묘역으로 옮겨 간 후에도 그 자리에는 아직 가묘로 그대로 남아, 비석과 사진도 함께 망월동 묘역의 슬픈 역사를 말해주는 듯...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그해 10월 박관현(5.18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은 광주교도소에서 단시 투쟁을 하다 사망한다.

  © 울산포스트


 

5. 18 광주민중항쟁에 희생 된 열사들을 위해 새롭게 조성한 국립 민주묘역을 제1묘역이라 칭하고 그 이전 망월동 시립묘지와의 사이에 새로 확장하여 조성한 묘역을 제2모역이라 부른다‘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이기에  이 나라 민주화의 상직적인 가열찬 그때 그 민주항쟁 대모대의 노래가 지금까지 이곳 광주 국립묘역에 울러퍼지는 애곡이 되어  오늘도 이 노래를 들으며 묘역 앞 참배 제단으로 나아간다

  © 울산포스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이기에 .집회 시작 시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할 때 그 일부로서 포함된 것. 국민의례 때 애국가가 불리는 것처럼, 이를 통해 80년 광주가 민주화의 기수로써 이 나라 민주화 운동세력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 시인의 시 '묏비나리'를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어 가사로 만들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서 숨진 윤상원과 1979년 겨울 노동 현장에서 들불야학의 선생으로 일하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굿 '넋풀이'를 통해 처음 발표되었다. 그 뒤 1982년 제작된 음반 <넋풀이 - 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 널리 알려졌고 민주화 운동은 물론 진보 계열의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 학생운동단체 집회에서 널리 불렸다. 

  © 울산포스트


  

 

  5.18 당시 언론은 신군부의 검열로 엄군의 살상행위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항쟁을 폭동으로 시민군을 폭도로 몰아가, 분노한 시민들은 5월 20일 광주 MBC 다음날은 KBS와 광주세무서에 몰려가 불은 질렀다.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연극이 지금 5. 18 광주 민주항쟁의 현장인 국 전남도청 뒤편 구 전남도경이 있던 자리에 새롭게 새워진 아시아문화센터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무려 3시간에 걸친 백여 명의 백우와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펼쳐진 지난 고아주항쟁의 생생한 투쟁 역사를 재현한 이날(5. 23) 밤의 공연은 참으로 죽은 자의 혼백이 다시 찾아와 산자와 함께 눈물과 감동을 자아내는 열연이었다.

 

과연 5. 18 민주항쟁의 역사를 생생히 재현하고 40년이 지난 금일까지 그 정신을 계승하려는 피나는 노력이 돋보이는 그곳이 바로 금남로 민주광장, 구 전남도청 일대 분수대 광장 그리고 전일 빌딩 245발의 총탄 흔적도 그날의 함성과 절규를 긴 메아리로 남겨주고 있다. 분수광장 그 중앙의 의 분수대 위에 올라서서 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군이 수만 명의 운집한 시민들을 향해서 열변을 토하던 장면을 생생히 오늘에 재현되고 있다.

 

  © 울산포스트


이렇게 광주의 정신은 5. 18의 정신으로 뭉쳐, 최후의 항쟁터인 전남도청을 복원하여 그들 아니 이 나라 민주화 항쟁사의 중심에 우뚝 서게 만들고 위대한 민주투사의 혼백과 그 정신을 영원히 기리려는 시민정신과 혼연일체가 되어 더욱 빛을 발하고 살아서 역사하고 있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죽림굴 칼럼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