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축구의 전설 조빼킹, 한동호, 이윤제, 이원준

울산포스트 | 기사입력 2023/01/13 [08:42]

울산 축구의 전설 조빼킹, 한동호, 이윤제, 이원준

울산포스트 | 입력 : 2023/01/13 [08:42]

  울산씨름 만큼이나 울산축구도 5.60년대 울산군민의 인기와 사랑을 누렸고 전국적인 명성을 날렸다. 개인기의 진수를 보여준 전설적인 씨름 선수들이 있었는가 하면 팀워크의 아름다운 결정체인 축구에도 전설적인 스타 프레이어star player가 있었다. 그동안에 울산씨름에 대해서는 몇차례 글을 쓴 바 있으나 울산씨름 만큼이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했던 축구에 대해서는 아직 글을 못다 썼다. 왜냐하면 내가 명색이 울산 토박이로 태화강변에 태어나 평생 고향을 지키며 이 나이를 먹도록 태화강둑 아래 외딴집에 살면서 강둑 너머 태화강 금모래 삼각주에서 매년 추석이면 열렸던, 울산군민 최고의 축제였던 전국 씨름대회 구경은 어린 시절부터 추석마다 빠짐없이 아니 누구보다 많이 또 열심히 구경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었는데 축구 또한 이에 못지않게 좋아했었고 경기장 마다 찾아다녔던 열성 팬으로 내가 본 자랑스런 울산 축구 전설도 전하고 싶다.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 없다“고 당시 축구 명문 울산제일중학교에는 조빼킹(조 베이킹, 조진구) 선생이라는 걸출한 체육선생이 있었으니, 일찍이 북경(베이킹) 육상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 할 정도의 주력과 축구 선수로도 이름을 떨쳤던 청년이 고향 시골 중학교에 자원하여 한국 죄고 수준의 기량을 가르치며 제자들을를 양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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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호, 이윤제, 이원준도 모두 이때 육성 베출된 선수들이다. 1950-60년대 유일한 울산군민 체육 경기장은 복산동 현 울산교회 뒷편 수풀이 우거진 울산공설 운동장 한군데 뿐이었다. 풀밭은 요즘 호사스런 잔디 구장에 비견 할 수 있을는지 좌우간 한차례 군민 축구 체육 행사가 끝나면 풀밭은 맨땅으로 변했다.

매년 8.15 광복절 경축식이 끝나면 이곳 울산공설 운동장에 전 군민이 모여 리里. 동洞 대항 축구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요즘 태화강변에서 연일 밤낯 없이 열리며 유행하는 소위 울산의 최대 축제요 울산전국씨름대회와 함께 열리는 유일무이한 경축행사였다. 이때면 등장하는 축구 선수들이 당시 숨겨진 울산 축구의 청년 스타 프레이어 였으니 이들 대부분은 울산 제일중학교 축구부 출신이거나 혹은 울산농고나 울산고로 진학한 축구부 출신이었어니 모두 조빼킹 선생의 제자들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다크호스로 등장하는 일군의 뉴 페이스가 바로 부산에 유학을 갔거나 축구 명문고에 스카웃 되었던 선수들이었는데 당시 축구 명문고로는 부산상고, 동래고, 경남상고 등이었으며 이곳에서 현역 선수 뛰던 학생들이 방학이라 고향에 왔다가 동대표 선수로 출전해서 유감없이 실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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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옥교동 출신의 한동호(시계탑 사거리 박영출 체육회장의 인척)는 명문 부산상고의 주전으로 포지션은 주로 수비수인 센터합부(링커)로 이미 당대에 그 명성을 날렸던 선수로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몸집이 크고 비대하기까지하여 동작이 좀 느리긴 했으나 오히려 그의 묘션은 유연하기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민첩해서 나는 돼지라고 불렀던가? 일단 볼을 잡으면 특유의 페인트 모션과 빼어난 드리볼 실력에으로 서서히 지경을 넓히며 단독 질주 수비수에서 순식간에 공격수로 돌변 상대 골 문전까지 멋지게 몰고 가서 통쾌한 슛팅을 날려 반드시 골 득점을 했다. 특히 그의 단독 드리볼과 정확한 패스 센터링은 과히 일품이라 후일 많은 축구 애호가들이 국가 대표급이라 그의 타고난 천재적 축구 기량을 칭찬하며 요즘 같으면 축구선수로 더 성장하여 국가대표 선수로도 손색이 없는 재목이라 아쉬원했으니 과히 당대 최고의 선수라 할 만 했다.

60년대 들어와서는 성남동 출신 이윤제 선수는 한동호보다는 후배였는데 그의 포지션은 축구명문 동래고의 센터포드로써 공수를 겸비했던 한동호 보다는 더 적극적이며 저돌적인 공격수로 마치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를 닮은 타고난 체격을 갖춘 거의 완벽한 공격형 축구 선수의 체격과 자질을 두로 갖추었으니, 일단 볼을 잡기 시작하면 마치 월드컵 경기에서 펠레나 마라도나가 적진을 파고들며 거침없이 볼을 몰고 그라운드를 질주하듯 빼어난 힘과 기량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맹스러운 선수였다. 단독 드리볼로 적진을 뚫고 나서는 전광석화 같은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는 한때 동네에서 주먹도 세기로 소문이 날 정도라 후일 실업팀에서도 해결사 노릇을 도맡아 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의 빛나는 실력을 평소에는 알 길이 없었으나 이날 공복절 기념 축구대회에서만은 그간 숨겨놓았던 비장의 축구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울산군민 8. 15 광복절의 기쁨을 마음껏 발산하는 신나는 축구 묘기로 모처럼 방학기간 고향에 돌아와 군민들에게 유감 없이 실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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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준은 이들의 후배로써 60년대 맹활약을 했던 역시 울산 옥교동 출신의 베스트 프레어로 한동호나 이윤제 선수처럼 제일중학교를 졸업 하자말자 축구 명문 부산상고로 스카웃 되었다. 나와는 울산초등하교 동기생으로 벌써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로 두각을 나타 냈을 뿐만 아니라 동급생 보다 나이도 몇 살 많았고 공부도 잘하여 6년간 급장을 도맡아했다. 그의 축구 스타일은 위에 언급한 한동호와 이광부 선배의 모든 장점을 겸비하여 체격이나 기량면에서 산터포드와 때론 수비수의 포지션까지 넘나들며 공수 겸비의 최 강자로써 과히 그가 운동장을 누비는 동안은 아무도 범접을 못할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과시했다. 원준이 볼을 잡았다 하면 반드시 골인시키고야 마는 악착 같은 축구의 근성을 보여주었다. 원준선수 역시 보다 요즘같이 좋은 환경과 지도자가 있었더라면 국가 대표급 선수로 성장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라 이쉬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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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모두 고동학교 축구선수 생활을 마감하고는 한동호는 당시 최고 실업 명문팀인 제일모직에 이윤제는 상업은행, 이원준은 신탁은행으로 스카웃 된다. 모두가 일시 실업 팀에서 뛰다가 30대 후반에는 평법한 직장인으로 일가를 이루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더 이상 촉망 받던 선수생활을 접고 직장에 전념하며 한때 은행 지점장, 울산 한국비료 사원으로도 근무 했다. 이들 전설적인 세 사람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 떠나지 않고 혹은 금일까지 축구 조기회원들에게 회자되며 모두가 아쉬워하는 울산축구의 전설이며 영원한 우리들의 스타 프레어였다.



‘못다한 이야기들’
이즈음에 삼호초등학교는 드디어 전국국민학교(초등학교)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쟁취했으니, 실로 개교 이후 4학년때부터 출전했던 선수들이 6학년이 되었던 해 3번째 출전에서 우승을 했다.
강변 씨름장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우리집이 있어서 3-4일간 열전이 벌어진 뒤 마지막 새벽녘에 열리는 최종 장사 씨름 결승전은 어릴 때부터 담요를 뒤집어 쓰고 뛰쳐나가 빠짐없이 세기의 천하 장사들의 명장면을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인이 된 후에는 벼르고 벼르다 나도 태화강변에서 열리는 마지막 씨름판에 출전 할 기호를 놓치지 않고 연거프 멋진 기술(앞뱀이)로 3명을 쓰러뜨리는 기염을 토하며 선수권도 쟁취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 장사 씨름대회에서 본 바로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그 장군들의 비호 같은 기량을 그대로 구사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울산포스트. www.ulsanpos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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