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목련꽃 피는 언덕

울산포스트 | 기사입력 2008/04/11 [04:22]

(제2편) 목련꽃 피는 언덕

울산포스트 | 입력 : 2008/04/11 [04:22]

 

한 잎의 꽃잎 조차도

 

지상으로 내려다 보지 않는

 

목련의 도도함이

 

봄 햇살을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야망의 언덕에 피어난 목련은

 

올 해도 구슬픈 봄비의 시샘을 받고 비바람에 휘날립니다.

 

왜 해마다 4월이 오면 목련은 비바람에 비참히 쓰러져야만 하는가?

 

잔인한 4

 

야망의 언덕 위로

 

목련꽃은 피고 또 지는데....

 

 

 

 

잔인한 4월이 돌아오자 야망의 언덕에는 금년에도 하이얀 색깔 중에서도 가장 품격이 높은 아이보리색 목련화을 피우기 시작했다.

 

3월 말부터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던 목련화는 28대 총선이 시작되는 날부터 철의 집 마당 안이 가득 차고 넘치도록 수돗간 옆으로 핀 작은 앵두꽃과 함께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

 

 

 

1.

 

78기의 정신으로 군사독재 정권의 법통을 이은 30년 집권여당인 정윤의 국회의원의 3선을 저지하고 반드시 중구민의 자존심을 찾아 주겠다던 울산 민주화의 기수요, 파수꾼이었던 이철은 오늘 아침 결국 지난 30일간 선거운동 대장정의 막을 내리며 이번 총선 출마를 중도 사퇴하기로 했다. 이미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매일 유권자를 만나러 중구 거리를 샅샅이 찾아다니며 외롭지만 끈질기게 발이 부르트고 손등이 아프도록 뛰고 악수 하며 무려 2만 여 장의 명함을 뿌린 뒤였다.

 

본래 외통수 외고집에다 한번 작심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60평생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온 길이기에 집안마저 고적하기 짝이 없어, 이미 80년대 민주화의 봄을 맞이한다고 고향 울산땅에 돌아와 88년부터 민주화의 투사로써 6번 야당으로 선거를 치른 이제 63세 초로에 접어든 그를 더 이상 세상은 알아줄 이도 지원해줄 세력도 측근도 없었기에 청년 자원봉사자 한두 명을 데리고 하루 평균 30리씩 발품을 팔며 울산의 거리를 돌아 다녔다. 시가지의 열려진 점포마다 찾아들어가서 '이번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잘 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를 수도 없이 외치면서 유권자와 어깻죽지가 아프도록 악수도 하며 하루 2-3천장의 명함을 손수 뿌리며 다녔다.

 

되돌아보면, 지난 달 3일 오전 10시 울산 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중구 출신의 철은 제28대 총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이번 총선을 온나라당 일당 선거판으로, 공천은 곧 당선인 것처럼 몰아가는 현 정국을 개탄하며 다시 민주화의 기수가 나서서 78기의 정신으로 반드시 당선되어 태화강의 기적을 일으킨 울산의 중심 정치1번지 중구의 자존심을 되찾고 몰락한 중구의 상권을 회복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방송사의 카메라와 울산의 전 언론사 기자들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거침없는 그의 승리의 자신감은 미리 배포 된 보도자료도 무시한 채 열변으로 이어졌다.

울산 정치 1번가 중구에 이다지도 사람이 없단 말인가? 울산 민주화의 파수꾼이요 큰일꾼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울산 민주화의 파수꾼인 이철이 울산공단을 건설했던 특급건설기술자의 솜씨로 혁신도시를 건설하고 중구민의 자존심을 되찾아드리겠습니다."

 

"과연 민주공화국에서 막대기도 온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며 서울의 친박, 친이로 갈라서서 충성서약을 하고 개헌 저지선을 육박하며 1당 독재로 몰아가는 4928대 총선을 온나라당 1당 선거판으로 버려두는 것이 민주시민의 양심이고 시대정신이며 산업수도의 100만 시민이 선택해야 할 정당한 민주주의의 노정인가?"

 

"이는 28대 총선을 마치 지난 정권의 좌편향 정국의 위기를 느끼면서도 국민들이 노현 탄핵 정권을 동정하여 신생정당 열우당에 과반수의 국회의원을 뽑아주었듯 순전히 감정적, 극단적, 집단 저항의식의 산물이었던 17대 총선이 재현되는 듯한 형국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깨끗하고 사명감 있는 참신한 새 인물을 고대했으나 초장부터 지방언론은 여론조사란 마녀 사냥법을 동원하여 정치 신인의 출현을 사전 봉쇄했음인지, 기존 정치 패거리들의 압도적인 여론 선점으로 유권자의 기대를 무너뜨리며 끝내 소명받은 자는 나타나지 않고 '정윤 후보 당성 엿보기' 같은 낯간지러운 논평을 까는 k일보처럼 야성을 초전 박살내며 금권과 일당독재의 여론 몰이에 편성하려는 위험한 발상이 작금의 온나라당 일색 일당 선거판과 같은 비참한 결과를 더 이상 초래해서는 안되겠습니다."

 

"4월은 잔인한 계절 다시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누가 이 땅의 民主主義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지적했던가? 自由一堂독재는 청년학생들의 피의 의거로 물리쳤고 다시 군부독재에서 민정자당, 신대한당, 민자야당에서 금일의 온나라당이란 온갖 이름의 잡탕당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참다운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피 흘리며 투쟁했던가?"

 

"저는 민주화의 파수꾼으로 1988년 절두 정권의 23대 총선부터 24, 25, 27대 국회의원에 그리고 초대, 2, 두 번의 무소속 구청장에 출마하면서 금권 패거리정치의 폐단을 뼈저리게 느꼈고 이 땅의 부정선거와 부패 정치와 피 흘리며 투쟁할 때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쓰임 받는 인물이 되자이것이 내 인생 철학이며 60여 년을 숨 가쁘게 달려온 이력입니다."

 

"금일까지 울산의 정치권력을 장악해온 패거리들이 중구를 몰락시켰고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울산의 허파요 거울인 태화들까지 부동산투기와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만들려던 c 국회의원의 기도를 시민과 함께 물리쳤으며 더 이상 중구의 폐허화 되는 현실을 결코 좌시할 수 없어 역사의 심판을 받게 할 것입니다. 70년대 울산 공단과 해외 건설의 주역이 되었고, 80년대 고향 민주화의 파수꾼이며 행동하는 양심, 90년대 후학 양성과 평생 사회교육자, 장애우 후원자, 2000년 새천년 세계화의 비전을 안국 산업수도 울산의 국제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1~15(1986-2007) 국제 어린이 축제(30 개국 참가)를 개최했으며 "

 

"울산공단을 건설했던 특급건설 기술자는 몰락한 구시가지의 상권을 회복시키고 폐허화한 중구의 재건을 위한 혁신도시(그린 밸리 아닌 그린 힐) 건설도 해외건설 현장경험과 고향을 진정 사랑하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려 반드시 완성 할 것이며 국제고등학교, 국제외국인학교, 국제문화교류센터를 설립하고 세계화 시대 지구촌 교육의 중추도심으로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양질의 외국자본을 유치하여 문화예술의 전통거리, 공업역사박물관도 조성 할 것입니다."

 

라고 설파하며 야당으로 그것도 무소속으로는 매우 험난하고 어려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이번이 7번째 출마자답지 않게 아니 꼭 78기의 영광을 이루어 내고야 말 열정으로 그 다운 자신감을 강하게 피력했다.

 

그는 기자회견 후반에 가서는 자신의 그동안의 약력을 간단히 피력하기도 했다.

 

"울산공단 건설의 주역이었으며 태화강의 시인이요 수필가요 칼럼리스트이며 3권의 저서와 울산 포스트 인터넷 신문사 설립자 겸 주필로서 중구의 상권 재건과 혁신도시 건설, 태화강에 유람선을 띄우고 선바위에서 장생포, 방어진까지 관광벨트를 조성하는 태화강() 마스트 플랜을 명쾌히 제시하며 다시 중구를 살기 좋고 인심 좋은 교육 문화의 중추 도심으로 만들어 太和江의 기적을 완성 시키겠습니다.

지난 20년 내 정치 생명의 총결산의 대미를 78기 승리로 장식 하며 중구민의 자존심을 되찾아 드릴 신념으로 최후의 심판을 받고자 노병(老兵)은 변절하지도 죽지도 않고 마지막 최전선에 섰습니다. 내 사랑하는 고향 울산 중구 구민과 시민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을 바랍니다." 며 결코 3선 연속 당선이란 있을 수 없다는 징크스를 상기시키며 기필코 당선되어 울산 민주화의 올바른 정치사를 다시 쓰겠다." 라고 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철의 명함에 찍힌 교육경력 또한 참으로 다채롭기조차 하다.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초등학교, 제일중학교를 졸업하던 해가 당시 군사혁명정부의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장군이 울산 출신의 이후락 비서실장을 대동하고 울산 고사리에서 공업센터 기공식을 거행하던 1962년이었다. 행사에 동원 되었다가 20리길을 걸어서 동아 오는 길에

 

"난 장차 울산공단을 건설하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라며

 

소년의 야망과 포부를 가슴 깊이 새기고 당시 보릿고개라는 무서운 가난이 온 나라를 짓누르고 있을 때인데도 지방의 울산 농고를 가기도 어려운 가정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무모하다 시피 한 유학으로 바로 부산공고 건축과를 택하여 문현동 산비탈에서 자취생활과 울산에서 범일역까지 새벽 기차로 무려 3시간씩 걸리는 기차 통학도 감내하였다.

 

대학 진학 시에도 외동아들인 그의 집안에 일찍이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 한분이 근근히 농사로 뒷바라지를 하는 어려운 경제적인 형편인데다 막상 부산 공고에 들어가 보니 건축과가 자신의 적성에 전혀 맞지 않아 한동안 전공을 바꾸려 고심도 했지만 처음 먹은 마음대로 한시바삐 고향 울산에 돌아가 당시 한창 건설 중이던 공단건설에 참여하겠다는 일념으로 한양대학교 공대 건축공학과 선택하고 결국 1972년에 공학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을 하자마자 바로 울산으로 달려와 공단건설에 참여하여 울산, 한국카프로락탐 건설, 현대중공업 건설한 후, 잠시 학성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에서 그가 평소 원하든 교육학을 전공하게 된다.

 

다시 경남기업, 국제건설 회사의 해외기술부에서 인도네시아에 한국대사관 공사와, 쿠웨이트 현장소장을 거친 후 일시 휴가차 한국으로 나온 해가 1979년 바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18년 군사독재 정권이 종언을 고하며 민주화의 봄이 찾아온다며 좋아라 하던 그 해 고향 민주화의 기수요, 파수꾼임을 자처하며 울산 민주화추진운동의 지도자로 변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귀향 후에는 울산 국제화를 꿈꾸며 이 도시에 처음으로 외국어학원과 울산사회교육연구소를 설립하고 울산국제화공업도시의 비전을 제시하며 울산에 산재한 30개국 외국인 기술자 자녀들을 중심으로 울산의 어린이들에게 세계화의 꿈을 심어주고 국제친선과 수출입국의 상징인 산업수도 울산의 보다 바람직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신념으로 외국어교육과 '국제 어린이 축제'도 지난 28년간 주관하기도 했다.

 

이처럼 울산 공단 건설의 주역이며 울산민주화의 기수로 13대 총선부터 정치 일번지 중구의 유일 야당후보로 군사독재정권의 거물 김호 후보와 싸워 금권부정선거에 석패한 후 24, 25, 27대 국회의원과 초대부터 3대까지 2번씩이나 구청장에 출마했던 철의 28대 국회의원출마 기자회견이 있었으나 또다시 약속이나 한 듯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번에도 역시 울산 지방 언론은 말로는 경마식 보도를 지양하고 유권자 중심의 공정한 보도를 하겠다면서도 과거 금권선거의 향수를 잊지 못한 듯 초반부터 반응은 시큰둥했다. 언론사의 논조는 대략 이번 중구 선거는 거의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6개 선거구에 한차례 온나라당 공천 파동이 있었고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온통 온나라당 판의 28대 선거를 치룰 지경인데도 그래도 이번에도 다시 용기 있게 철이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지며 중구민의 자존심을 되찾겠다며 출마를 선언했으니 언론에서도 제법 관심을 기울일 만도 한데, 역시 그간 6차례나 신념을 가지고 군사 독재와 싸우며 정의의 편에 서서 돈 선거 아닌 공명선거의 원칙을 준수해 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후보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며 발품 팔아 당선을 꿈꾸는 허황된 후보라고 비하하며 별 관심도 없고 제대로 된 보도도 해주지를 않고 있다.

 

 

2 .

 

철은 출마선언 1개월여 전에 일단 중구에 야당 후보로 출마했던 송호 민중당 대선 울산 선대위원장을 찾아가, 중구 출마 여부와 온나라당의 정윤의원에 11로 대항할 야권후보 단일화가 절실함을 누누이 지적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현 상태에서는 근로당의 천태 후보가 이미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태에 타협이 이루어질리 만무하고 자신은 이제 민주당의 원로중의 원로이므로 별로 야당 민중당 후보로 금번 28대 총선에 출마할 의사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1달이 지난 후 그는 과연 공언한대로 수차례 출마한 바 있는 울산 중구지역구의 출마를 포기하고 민중당에 전국구 비례대표 신청을 했다. 그런데 언론이 무수히 출마를 예상했던 송호는 중구 출마를 접으면서 그의 빈자리에 왜 하필이면 남구에서 국회의원과 2006년 구청장까지 출마했던 같은 당 전 시당위원장인 임호 위원장을 내 보내려 했을까? 철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결국 임호는 등록 마감일 하루 전날 남구에서 태화강을 넘어 이번에는 중구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물론 수차례 남구와 중구를 저울질 하며 선뜻 출마 선언을 못하고 예비후보 등록을 미룬 상태에 있긴 하지만 하여간에 뚜껑당의 한 솥밥을 먹었던 송, 임 두 사람이 마치 바톤 터치라도 하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온나라당 1당 선거에 대항하여 야권 후보단일화로 이를 견제하려 안간힘을 쓰는 판에 굳이 지역구까지 바꾸어 가며 야권을 분열시키고 온나라당에 유리한 구도로 몰며, 중구의 송호씨 출마자리를 구태여 채우려드는 의도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온나라당 일색의 선거구도를 깨뜨리기 위해서라도 자기의 정치 터전을 지키고 잘 가꾸어 지역민과의 신의를 지켜 나가야 하며 당초 송호에게 "후보 단일화를 위해서라며 내 기꺼이 당신의 선거대책위원장이라도 맡을 각오"라고 제안했던 철 처럼 정치도의와 신의를 존중하며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적어도 큰 정치를 하겠다며 야당의 원로라고 자칭하는 사람의 올바른 처신이 아닐지, 철의 머리는 다시 혼란과 배신의 한국 정치사를 읽는 듯 복잡해지고 있다.

 

물론 자기 지역구에 후보도 내지 못하고 전국구 비례대표를 신청한다는 것이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그리 할 수도 있겠지만 온나라당 선거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도 일조를 한다는 것도 정치인으로서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인데 오히려 얼토당토 않는 타 지역의 남구의 후보 예상자를 끌어들여 온나라당 독판 선거판과 3선 저지를 뒤집어 업고 망쳐버리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기사 모두가 민중당 후보이기를 기피하며 전략공천을 모색하는 현 상황에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어려운데 여당시절에는 27대 총선에서는 6개 선거구를 모두 채우고도 남았던 반면, 야당으로 추락하면서 후보들이 자취를 감추는 것을 보며 시류에 따른 이해득실 계산이 어쩌면 이렇게도 민첩한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며 곧 탈당의 도미노 현상도 벌어지겠지 하는 냉소적인 시각도 만만찮았다.

 

중앙의 4대 메이저 언론들하며 지방 언론들도 연일, 총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이처럼 지역의 구()여권 핵심 인사들이 하나같이 출마를 고사하는 자들을 비판하며 "울산에서 정치를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책임 있는 인사들은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며 결단을 촉구했다. 이어 "민의를 받들겠다며 정당에 몸담은 참 정당인이라면, 어려울수록 당당하게 나서서 유권자들로부터 떳떳하게 심판을 받아야 한다." 면서 "참여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의미가 없다." 며 총선 출마를 독려하기도 했다.

 

공천 후유증으로 사분오열 되고 있는 영남에서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온나라당의 파벌정치 부활은 정당민주주의를 후진시킨 패착으로 남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김삼 전 대통령도 전일 부산 경성대 특강에서 민의를 전혀 존중하지 않은 공천이라며 “(당 실세가) 멋대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만 공천해버렸다고 비판했다. 차남 헌철씨의 공천 신청 불허와 과거 측근들의 잇따른 공천 탈락에 대한 불만의 표출일 수 있지만, 계파 지분 챙기기에 치중한 온나라당 공천을 보는 민심의 일정 부분을 요약한 듯, 유권자들은 파벌과 구태로 되돌아서는 여야는 유권자가 심판일 49일을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항상 그래 왔지만 인부족, 세부족, 역부족 속에 고독한 싸움은 이미 23대 총선 시 울산 중구에 민주화의 기수임을 부르짖으며 민정당의 거물 김호와 붙을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당시 당선자와 접전을 펼치며 결국 무더기 투표 적발로 개표 중단 사태까지 가며 석패했지만 당시 울산 시민들은 철을 '정신적인 국회의원'이란 말까지 생겨날 전도로 아쉬워했다. 이후 지난 20년간 6번의 선거를 치루는 동안 골수 야당의 고독한 싸움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26대 대선 시 보통당의 대중과 잡탕당에서 토사구팽된 종필이 다시 신공화당을 복구하여 만든 민자련이 연합하여 나선 대중 후보가 여당인 창을 이기고 처음으로 야당이 정권을 쟁취했을 때 마침 이때 과거 23대 때 신공화당 위원장으로 출마한 인연을 버리지 못해 민자련으로 중구 위원장을 맡고 대선을 적극적으로 도왔는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 중구 국회의원을 지낸 차준이 찾아와 민자련 입당을 애걸하기에 받아드렸더니 그 후 그는 철과 의논 한마디 없이 중앙당으로 찾아가 이미 철이 신청해 놓은 시장 후보로 재빨리 중앙당에서 공천을 신청했고 늦게서야 이 사실을 확인한 철이 차준의 시장출마 중앙당 기자회견장 과정을 지켜보고 그 자리에서 그의 교활함을 강력히 지탄하자, 철에게 반감을 품고 급기야 한때 김호의 선거 참모였으며 지금은 우산 태화강변 나루터 식당 업주로 있던 민자야당 출신의 정갑을 중구 구청장 후보로 공천을 받게 만드는 참으로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끔직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후 여당에서 다시 종필당으로 옷을 갈아입은 정갑이 청년들을 몰고 밤중에 철의 사무실로 찾아와 철에게

 

형님 이번에는 구청장을 저에게 양보하고 대신 차기에 국회의원에 출마하십시오. 제가 구청장에 당선되면 적극 돕겠습니다.”

 

불칼 같은 정의의 사나이 철은 단호히 응징한다.

 

그래 차준이 나에게 종필당에 들어와도 좋겠습니까 하던 때는 언제이고 너와 차준이 짜고 내 공천까지 뺏어가면서 날 국회의원이나 하라고, 그게 양심 있는 정치인의 소리인가? 정치도의상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다. 너와 내가 동반 낙선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반드시 출마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정갑은 두말하지 않고 함께 온 청년들과 사라져버렸다. 그런 후 약속이나 한 듯 둘 다 출마하여 보기 좋게 낙선했고 중구청장은 중구의 국회의원이자 최고 실력자 김태의 공천을 받은 자가 어부지리로 당선 되었고 철의 당으로 시장에 출마했던 차준은 선거 중도에 양심의 가책을 받았음인지 도중하차 하고 말았다.

 

두 번째 철의 기자회견이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열리게 된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 땅의 야성과 민주화의 기수이며 시대의 양심이라 자부하던 그가 왜 이번 28대 총선에서는 예비후보로 등록을 한 후 하루 3000명의 손을 잡고 이미 20000장의 명함을 돌렸다는 그가 갑자기 후보 단일화를 외치며 기자회견을 자청한 까닭이 무엇이며 만약 단일화가 안 되면 스스로 용퇴하는 결단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까 ?

 

이때부터 울산의 언론도 조금씩 그의 반응과 용단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 같다. 드디어 울산 중구 철 예비후보는 24일 오전 11시 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저는 금일 한나라당 1당 독재 체제를 막기 위해 울산의 정치 1번지 중구에 야권 후보인 민중당(임호), 근로당(병태), 그리고 민의당()이 온나라당과의 1 : 1 선거 구도로 28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가기위해 후보를 단일화할 것을 제안 합니다.

저는 명일(3/25) 15시에 이곳 기자실에서 후보 단일화를 합의하여 만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1명의 후보를 교황식 선출방식으로 뽑고 나머지 2명은 공동 선대 위원장이 되기로 기자회견을 열 것을 제안합니다.

특히 제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가 신당을 택하게 된 경위는 이미 온나라당 판 선거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던 중구에 결국 남구의 민중당 출신까지 합류하게 되어 출마선언 전에 송호씨에게 제안했던 후보단일화가 무산 될 위기에 처해 무소속의 의미마저 퇴색되어 가므로 이제 신당을 최후 보루로 삼고 승전을 치러야 할 처지에 놓였기에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후보단일화를 위한 저의 막판까지의 노력과 용퇴를 배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철은 야권 단일화를 위한 그간의 경위를 밝혔다

 

"1개월 전에 송호 민중당 대선 울산 선대위원장에게 중구 출마 여부와 온나라당의 정윤의원에 11로 대항할 야권후보 단일화를 제안 했을 때 현 상태에서는 근로당의 천태 후보가 이미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태에 타협이 어렵고 자신은 이제 민주당의 원로이므로 별로 민중당 후보로 금번 18대 총선에 출마할 의사도 없다고 했다.

이후 그분은 과연 공언한대로 수차례 출마한 바 있는 울산 중구지역구의 출마를 포기하고 민중당에 전국구 비례대표 신청을 했다. 그런데 그의 빈자리에 왜 하필이면 남구에서 국회의원과 2006년 구청장까지 출마했던 같은 당 전 시당위원장인 임호 위원장을 내 보내야 할까?

 

온나라당 일색의 선거구도를 깨뜨리기 위해서라도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자기의 정치 터전을 지키고 잘 가꾸어 나가야 하며 "후보 단일화를 위해서라며 내 기꺼이 당신의 선거대책위원장이라도 맡을 각오"라고 제안했던 한 야당 후보처럼 정치도의와 신의도 존중하며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적어도 큰 정치를 하겠다는 야당의 원로의 올바른 처신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지역구에 후보도 내지 못하고 전국구 비례대표를 신청한다는 것이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그리 할 수도 있겠지만 온나라당 선거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도 일조를 한다는 것도 정치인으로서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라 사료된다."라고 하면서

 

다시 한 번 철이 출마의 변을 털어놓았다.

 

울산 정치의 일번지인 중구의 자존심을 되찾아달라는 중구민의 간곡한 부탁에 따라 출마를 결심하게 된 저는 민주화의 파수꾼으로 1988년 절두 정권의 23대 총선부터 24, 25, 27대 국회의원 선거와 두 번의 무소속 구청장 출마에서 참패를 당한 바 있다.

과거 중구 역사상 어떤 정치인도 연속 3선에 성공한 거물은 없었다. 골수 정통 야당인 이 사람이 3선 연속 승리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주겠다. 지난 20년 정치 생명을 총결산하는 대미를 78기의 승리로 장식해 중구민의 자존심을 되찾겠기 위해 최후의 보루를 일당 독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창 총재의 선전당과 함께 기필코 승리하겠습니다. 중구민의 성원과 더욱 뜨거운 지지를 당부한다."

 

이 날 기자 회견은 여기에서 끝이 났다. 다음날 조간 울산m일보만 철의 단일화 제안을 가감없이 보도했고 나머지 4개의 일간지와 3개의 지상파 방송이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다.

'4·9’ 28대 총선 중구 신당 철 후보가 온나라당 정윤 후보에 맞서기 위해 민중당 임호 후보와 근로당 천태 후보 등 야권 후보의 단일화를 제의했다.

 

이 후보는 24일 오전 11시 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구의 상권을 몰락하게 한 민정당과 같은 뿌리인 온나라당 후보가 3선 연임을 하는 것은 중구민들의 자존심을 걸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온나라당에 맞서기 위해서는 나와 민중당 임호 후보, 근로당 천태 후보 등 야권 후보의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철 후보는 특히 “3자 합의를 통해 단일화가 어렵다면 교황선출방식으로 정치입문 선후배간의 아름다운 양보를 통해 울산에서 유일하게 한나라당이 아닌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민중당 임호 후보와 근로당 천태 후보는 모두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후보단일화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상이 25일 울산판 조간 신문들의 내용이었다.

 

다음 날 25일 아침부터 후보등록이 시작되었다. 철은 전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그야말로 상식적이고 순수하게 제안했던 후보단일화에 대한 양측 후보의 답변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다. 정오까지 아무 기별이 없었다. 그래도 아직 약속한 14시까지 2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후부터 전화기에 불이 나게 걸려오는 소리는 각종 언론사와 선관위에서 언제쯤 철 후보가 등록을 할 셈인가 하는 독촉전화와 문의뿐이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미 남구에서 오늘 중구로 넘어온 송호의 대타자 민중당의 임호 후보가 등록을 필했다는 한 신문사 여기자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도대체 이 나라의 선거법은 어떻기에 어제까지 남구 출마를 겨냥하다가 갑작스럽게 타지역구 후보가 등록마감 하루 전에 중구로 후보등록을 할 수가 있을까? 참으로 기이하다.

그리고 언론사들은 한결같이

 

'당신은 언제쯤 후보 등록을 할 작정인가?'하는 조롱 섞인듯 다급한 질문만이 계속되었다. 너무 허망하고 허탈함뿐이라고 말하며 철은 전화기를 놓고 평소 조용한 곳이라며 즐겨 찾던 원유곡동 최제우 유허지를 찾아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마치 사색의 늪에라도 빠져들고 싶은 듯 서너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생각을 다듬고 곧 용단을 내리겠다며 사무실을 돌아왔다.

 

다음 날 오전 철의 후보 단일화를 위한 불출마 선언은 분명하고 단호했다.

 

"지난 3/24일 기자회견을 통해 본인()이 제안한 '일당 독재 선거판을 획책하고 있는 온나라당에 대항할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본인의 뜻을, 비록 타당 후보들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뿌리쳤지만 지난 20년 이 땅의 민주화의 파수꾼이요 정치 선배로써,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먼저 후보사퇴의 용단을 내리게 됨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꼭 1 : 1의 구도를 만들어 기필코 승리를 거두기 바란다." 란 사퇴 성명서를 26일 오전 시의회 프레스센터로 팩스로 보낸 뒤 그동안 모든 선거 활동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철은 온나라당1당 선거판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야권 단일화밖엔 없다고 판단하고 이를 야권 후보들에게 강력히 요청하다가 상대 야권 후보의 냉담한 반응에 부딪치자 결국 제안자인 자신이 정치 도의상 먼저 대승적 차원에서 후배들을 위한 아름다운 양보로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고 결정해 25일 저녁부터 모든 선거 활동을 중단하고 그동안 제작중이던 선거 홍보물과 인력, 차량 동원 모든 선거운동을 중단시킨 채 이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곧 다시 본업인 언론사 주필에 복귀 할 것이라 했다.

 

 

목련꽃 피는 언덕에 봄비가 내린다.

 

목련꽃은 한 잎 두 잎 떨어져 철의 마당을 덮기 시작했다.

 

왜 해마다 4월이 오면 목련꽃은 비바람에 무참히 쓰러져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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