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출사표 (出師表) - 민주화의 기수

울산포스트 | 기사입력 2005/08/22 [08:58]

<5> 출사표 (出師表) - 민주화의 기수

울산포스트 | 입력 : 2005/08/22 [08:58]

   4.26일 제 13대 국회의원 선거일은 임박해 오는데 아직도 경남 정치 1번지 중구에 여당인 민정당에 대항해 싸울 야당 후보가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 유일하게 기대를 했던 13대에 근로농민당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던 이규는 이미 신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꾸고 이번엔 지역구마저 서울 양천구로 옮겨가 버렸다.



  김호의 선거 캠프에 몰려들었던 울산의 지역 유지들과 정치건달들은 그것 보란 듯 벌써 쾌재를 부르며 이미 무투표 당선 쪽으로 선거 전략을 몰고 갔다.



  이철은 요즘 들어와 자주 깊은 상념에 잠긴다. 소명 받은 자의 결단과 용기에 대해서도 거듭 생각을 되풀이 해본다.



  예로부터 나라가 어지럽고 위급할 때 충신, 열사가 역사의 인물로 등장했으며, 한 가정도 곤경에 처하여 생활이 힘들고 어려울 때 효자, 열녀가 탄생하고, 운동경기에서도 위기를 잘 돌파해 나가는 선수가 진정한 팀의 주장이요, 수많은 관중을 매료시킬 수 있는 스타플레이어(star player)가 된다. 극중에 주인공들은 대개 이 역할을 맡게 된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울산사회선교회를 이끌고 있는 교단의 두 분 목사님이 이철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형제, 요즘 울산의 많은 정객들이 권력과 재물에 눈이 어두워 해바라기성 정치 편력을 일삼고 있는데, 노동운동의 진원지인 이곳 울산에서 노동자, 학생들이 이렇게 민주화와 기본생활권을 부르짖고 있는 이때, 부디 시대적 사명과 민중의 부름을 외면하지 말고 불굴의 의지로 울산사회에 진리와 정의를 실천하기 바라오.>



  전목사가 먼저 정치 이야기를 시작하니  함께 온 원로 목사인 김목사도 말을 거든다.



  <양지보다는 음지, 향기로운 곳보다는 썩어 냄새가 나는 곳을 계속 찾으세요. 빛과 소금의 사명감을 한시도 잃지 말고, 울산공단, 해외건설에 이어 80년 좋은 직장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농아와 맹인과 함께 하며 교회도 짓고 사회교육자로 헌신 봉사했으니, 이제 새 시대 새 인물로 나서서 초지일관 울산 민주의 성역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민주화의 기수가 되어야 할 거요.>



  이철이 충분히 방문한 뜻을 읽었다는 듯이 매우 겸손한 어조로 대답하다.



 <내 목사님들의 뜻 저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부족한 이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순종하겠다는 어조의 인사로 돌아가는 목사를 배웅하고 사무실로 들어온 이철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긴다. 이 어려운 시대에 정치인 이철이 과연 어울리는 인물인가 하고 자문해 본다.



  이제 출마를 결심하고 출사표를 써야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오후에는 서울의 외국어학원연합회장인 파고다 고인경 원장으로부터



  <이철 원장이 보내준 “참 빛” 월간지에 실린 성전 터란 글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전화를 했다. 또 정치 참여 의사에 대해서 격려의 말도 잊지 않는다.



  <8년 전 서울의 좋은 직위 뿌리치고 고향에 돌아가 울산에서 처음으로 외국어학원을 개설 후학을 가르치고,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위해 봉사하다가 이제 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여  민주화의 대열의 선두에 서서 싸우려는 결단과 고독한 지도자의 길에 정녕 존경과 박수를 보냅니다. 힘내세요.> 멀리 서울에서 힘내라고 격려의 인사를 잊지 않고 통화를 끝낸다.



  이철의 아내는 어느새 남편의 고민하는 모습 속에서 무언가 현실정치에 뛰어들려는 낌새를 눈치 챘던지



  <여보 제발 다른 것은 다해도 정치만은 하지 마세요, 그럴만한 돈도 없지만 이 어려운 시대에 더구나 김호 같은 여당의 거물과 겨룬다는 것은 무모한 짓입니다. 정치하는 사람 치고 결국 패가망신 하지 않은 사람 없었어요. 제발 참으세요.>



  그러나 이철의 굳게 닫힌 입은 이미 심중에 중대 결단을 했다는 듯 별 대수롭지 않게 <응. 그렇게 하마. 걱정마라.>라는 듯 고개만 끄덕이고 자리를 피한다.



  이제 결단의 순간이다. 출사표를 써야겠다. 이철은 이미 오래 전에 구상을 해 두었던 듯 백지 위에 거침없이 힘 있게 심중의 뜻글을 써나간다.




 출 사 표 (出師表)



  1979년 10월26일 부마사태 이후 군사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저격 피살 된 후 한때 이 나라 정치체제가 혼란에 휩싸였다가 서서히 자유민주주의로 잉태되는 진통을 겪고 있을 무렵, 한편에서는 일단의 군부세력들이 신군부독재정권을 연장하려는 음모 속에 발생한 12.12사태 그리고 어지러운 정치 혼란의 와중에 광주에서는 민주항쟁의 민중 투쟁이 급속도로 확산되어 급기야 처절한 광주의거가 일어나 일찍이 우리 역사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지경의 국군이 시민을 향해 총을 쏘는 참담한 사태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동족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군부 또한 하급자가 최고사령관 아닌 최고사령관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하극상의 참담한 현실 하에 발포 명령을 받은 군인들은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광주시민을 향해 총칼과 탱크로 짓뭉개 버렸다. 결국 광주의거는 국군의 총칼 아래 일시 그 항쟁의 숨을 죽이게 되었다.
  민족의 지도자들은 국내외에서 납치 혹은 연금 당하며 혹은 감옥에서 고문으로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다. 오직 이 나라의 참 민주주의의 실현과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는 청년학생들의 저항에 부딪힌 신군부는 그 집권야욕을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켜 보려고, 국회개헌 특위를 만들고 의원내각제 헌법을 논의하더니, 또 일련의 공작정치의 장난인지 돌연 이를 폐기하고 다시 잠실 체육관에 모인 집권 민정당원들은 호헌 하에 노태우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를 치렀다.
  그러나 이미 활화산처럼 타오른 전 민족적 항쟁 앞에 민중은 승리하고 6.29 노태우 항복 선언을 받아낸 것이다. 이제 다시 이 나라 헌정사에 9번째 개헌안이 확정 공표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군사독재 25년 간 권력과 금력이 야합하여 중앙집권적 통제 기능 하에 지방의 군소 재벌 내지는 해바라기성 토호 권력의 온갖 부조리를 양산해내는 신군부는 이제 그 하부조직까지 부패했다.
  피로 세운 민주의 성역에 때 묻지 않은 깨끗한 새사람이 새 시대를 열어 가는 개혁의 의지가 없이는 도저히 민중이 편히 살아 갈 수 없게 되었다.
  부천경찰서 문 경장은 데모하다 잡혀온 여공 권양(서울사대 4년 중퇴)을 야간에 순순히 실토하지 않는다고 자기 방에 가두고 성 고문을 했고, 영동고급 룸살롱에서는 깡패들이 싸움을 벌려 4명이 살해되었는데, 일당을 잡고  보니 그중 홍모란 자는 전에 서울 박흥규 목사를 폭력으로 몰아내는 신도 중에 대장 노릇을 했던 사람이다.
  모든 언론이 통제를 받아왔고 진실이 왜곡 보도되고 온갖 유언비어가 활개를 치는 세상이니 참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부패한 권력과 결탁한 사법기관은 인권을 침해하며 정보원은 서울대 생 박종철을 물 고문하여 죽이고, 전투경찰은 연세대생 이한열군을 최류탄으로 저격 사살시켰다.
  헌정40년 민주주의라는 미명 하에 정치인들마저 국론을 분열시키고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를 다시 동서로 파당 지어  민족을 분열시키려하며 정치적 위기를 조성시키고 오로지 자신의 명예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족과 민주의 이름을 팔아서 사리사욕을 충족시키고 있다.
  이 나라 정치를 오늘의 위기로 몰아가는 정치지도자를 바라볼 때 어찌 심장의 피가 흐르고 밝은 눈과 귀가 열린 백성으로서 오늘의 현실을 외면하고 마치 짐승 마냥 무관심, 무감각하게 지낼 수 있는가를 자문해 본다.
  6월 민중의 민주 항쟁으로 우리 선량한 시민은 이 땅의 군사 독재 정부를 항복시켰고, 피땀 흘려 이룩한 민주의 성역에 그 어떤 독재의 음모나 이합 집산하는 분당의 괴수들이 범접치 못하도록 이제 우리 선량한 시민들은 이 민주화원을 사수할 것이며, 정치 도덕과 책임감마저 팽개친 칠면조 같은 정치 철새들이 다시 이 민주의 성역을 훼손시키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새 시대의 새벽이 열리면서 울산만이라도 노동자, 농어민이 우대 받고 선량한 시민이 잘사는 진정한 민주의 지방 시대가 열릴 때가 가까이 왔다. 우리 민중의 위대한 힘은 진정한 민주의 새 시대가 이 땅위에 실현되는 날까지 헌신하여, 민주화의 도구가 될 것이며, 민주의 옥토를 일구는 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금 엄숙한 마음으로 오직 이  나라 이 겨레의 민족 통일 성업을 이룩하셨고, 조국의 독립과 민주 대한의 무궁한 발전과 평화를 열망하신 위대한 선열을 그리며,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를 기다리며 부족한 울산의 아들 이철은 이제 민주화의 기수요 고향 울산중구를 지키는 민주주의 파수꾼으로서 오늘 13대 총선에 출마를 결심하며 출사표를 적는다.




  이제 이철의 출사표는 이쯤에서 끝이 났다.



  이철은 이날 출사표를 들고 그간 뜻을 함께 하던 동지들 앞에 나아가 출사표를 읽은 후 이렇게 덧붙이며 결의를 다진다.



  <우리 모두 울산 민주화의 파수꾼으로서  민족의 나아갈 바를 깊이 통찰하고,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배달겨레 임에 통일 성업 이룩하는 그 날 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매진합시다.>



  옳소, 옳소! 환호하는 소리가 사무실을 울려 넘친다. 이어서 모여 있던 동지들과 함께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다짐하며



  <이 나라 이 겨레의 내일을 생각하는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를 고대하며, 1987년 12월 17일 끝내 후보 단일화를 바라는 민중의 뜻을 저버린 양  김씨(김대중, 김영삼 후보)를 190여만 표 차이로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한된 노태우 후보에게 우선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국민과 함께 새 시대를 열어갈 용기와 열정으로 국민의 뜻을 하늘처럼 따르며 함께 민주의 새 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촉구한다.>는 새로운 비전의 글을 적어 함께 13대 총선을 행한 출사무적(出師無敵)의 정신으로 전의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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