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경남 정치1번지 울산중구

울산포스트 | 기사입력 2005/08/15 [09:24]

<4> 경남 정치1번지 울산중구

울산포스트 | 입력 : 2005/08/15 [09:24]

  한국인이 중국의 연변 조선족을 만나 그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백두산을 오를 때 왜 우리는 이 장엄하고 웅혼한 백두산을 우리의 북녘 땅을 통해 오르지 못하고 중국인들이 장백산이라 부르며 우리산의 절반을 뺏어간 남의 나라를 경유하여만 하는가를 한없이 탄식하며 조상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지난 10년 간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우리는 이들이 마치 40년 전 소위 개발독재 하에 세계가 경탄했던 우리자신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3김 낚시 론을 제안한 김동길 박사는 일찍이 이를 세계의 문명이 대서양시대에서 아시아 태평양시대로 다시 서구중심에서 동양권으로 변천하는 역사적인 순환 과정이라 지적하면서 한국 경제부흥의 신화를 남긴 정주영과 함께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한국의 뒤를 이어 바짝 추격해 오는 중국의 이 모든 경제성장의 원인은 바로 값싼 노동력에 달려 있음은 재론 할 여지가 없다. 60년대 초반에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울산 공단 건설의 기공식을 신호로 개발도상국가의 모델케이스로 급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기실은 당시의 잘 교육받고 준비된 한국의 값싼  노동력에 기인함은 아무도 부인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점차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과 기본생존권 보장이란 소리가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서울의 구로 공단에서 노조결성 움직임이 일고 동대문 평화시장에서도 이어져 도시산업선교회가 한국 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며 각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울산공업도시가 건설 된지 24년이 지난 1986년 8월19일 울산천주교회에서는 공해지구(여천, 온산, 언양) 이주대책 특별위원회가 주관하는 공해지역 주민대책회의가 열렸다.



  한국의 산업 수도요 국제공업도시 울산에서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공해지역에 살면서 공해병에 시달리고 또 공해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날 회의가 파 할 때 일부 이주대책위원회 참석자와 인권위원회와 연계한 형제교회 소속 청년들이 기관원 및 전투경찰들과 충돌이 벌어졌고 여기에 공해지역주민까지 합세하여 거리진출을 막는 전경들과 일진일퇴 접전이 벌어졌다.



  이즈음 울산 근대조선소에서도 심심찮게 노조의 결성 기운이 번지는 듯 하더니 어느 틈엔가 중전기의 노동자 옥균이란 자가 노조조합운동의 선봉에 서서 정부의 강력한 제재와 탄압에 맞서 싸우며 노동운동의 지도자로 점차 전국적인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사실 당시 근대조선소를 비롯한 울산공단의 작업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서울공대 조선과를 졸업하고 현장에 투입된 신입사원이 출근 첫날 조선용접 확인차 사다리를 오르다 부실한 족 장판을 밟다 추락하여 사망하는가 하면, 매일 한두 명 꼴로 죽어나가는 현장 노동자의 장례보상비는 100만원을 넘지 못했으니 가히 산업재해의 보상제도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노조결성을 허용하고 노동자의 처우개선과 기본생존권 보장하라!>



는 플랜카드와 어깨띠를 두르고 수 백 명이 중전기 정문을 나서려하자 경비원들과 어느 틈에 포위했는지 경찰이 이를 저지한다, 몸싸움을 벌여 보았으나 결국 이들은 뒤로 밀려 다시 옥상으로 집결하여 구호를 외치며 투쟁을 결의하고 있는데, 뒤따라 몰려 올라온 경비원들과 대치하든 중 갑자기 노동자 한사람이 5층 건물 옥상에서 추락하여 바닥에 떨어져 피를 쏟고 있다. 뒤이어 달려온 앰뷸런스에 실려 간 피투성이가 된 노동자는 몇 시간 후 사망했다고 한다.



  경찰이 노조결성 주동자인 옥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추적을 하고 있는 사이 재빨리 동료들의 도움으로 회사를 빠져나와 만 세대 독신자 숙소로 잠입한 뒤로 신출귀몰한 그의 행방은 마치 서울 전국대학생총학생회협의회의 입출 의장처럼 도무지 찾을 길이 막막하다.



  며칠 전 성남동 시장 변에 울산사회선교협의회 사무실도 압수 수색을 당했는데 마침 김훈 간사가 문밖을 빠져나가 3층 옥상으로 올라간 후에 다시 형사들이 쫒아 오자 당황한 김 간사는 그대로 옥상에서 뛰어 내렸는데 다행히 전깃줄에 몸이 한번 닿고 다시 땅에 떨어진 까닭에 충격이 좀 덜 하였는지 뿔뿔 기어서 간신히 몸을 피신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노조운동은 도시산업선교회와 함께 회사를 망친다하여 불법단체로 몰아 정부가 강력히 단속해 나가지만 이런 탄압 속에서도 전국의 노동현장에서부터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가는 노동조합 결성 기운은 더욱 거세져가기만 했다.



  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온 나라가 경기장 건설과 대회 준비 열기로 들떠 있을 때 한편 정치권에서는 부지런히 4월의 제13대 총선을 겨냥하여 새로운 선거방식을 도출해 내느라 열중하고 있었다. 밀고 당기며 긴 파행과 타협 끝에 얻어낸 결론은 중대선거구제 선거방식에서 소선거구제로 전환하였으니, 그동안 지역감정을 부추겨 권력을 맛들인 기존 세력들이 다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짜낸 것이었다.



  이제 울산의 정치권도 새로운 핵분열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그래도 여당 1석 야당1석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적당히 갈라먹었던 울산의 선거구가 갑자기 중구 남구 동구 울주군의 4개 구로 나뉘어졌다. 의석은 2개가 더 생겼으나 과연 경남정치1번지 울산 중구를 피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정치의식으로는 좀체 명분이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점도 정치인들의 거취를 정하는 고민거리 중에 하나였다.



  누가 울산의 민주주의를 옥토를 가꾸고 화원을 지키는 파수꾼이며 민주화의 기수였던가?



  1988년까지만 해도 아직 남구는 허허벌판, 삼산 달동의 구획정리사업이 채 시작되기도 전이었으며 사실상 울산의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지는 중구였으며 모든 것은 이곳 중구에서 이루어졌고 모든 길이 중구로 통했던 시절이었다.



  결국 중구는 2선에 도전하는 여당 민정당 울산 천곡 출신의 김호가 선점을 했다. 그의 중구 출마선언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가만히 거취를 주목하던 여야 출마 예상자들의 움직임은 분주했고 가히 울산의 정치 판도에 대 지각변동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강력한 신군부 정권의 지원을 받고 거의 당선권을 예약 받는 집권 민정당의 분포는 대략 남구에 울산 토박이 울산국민학교 출신의 차수와 야당에 심완, 울주군에는 서울에서 영입된 케이스의 재경부 차관 출신 김무와 야당의 권술, 동구에는 근대조선소의 사주이자 정주의 아들인 정몽이 출마를 선언했는데 동구의 정몽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서 생각해서 그런지 아직도 여당후보는 미정 된 상태로 별 나서는 이가 없는 가운데 사실상 한국노동운동의 메카로 노조운동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와중에 이들의 세력을 여하히 막아내는가 하는 일 외에는 동구 선거의 결과가 뻔한 일로 모두가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대체로 13대 선거구도가 결정이 난 후에도 한 가지 재미있는 기현상은 이적 경남정치1번지라고 했던 울산 중구에 야당이 아무도 나서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민주화의 기수요 투사라고 설치던 야당정치인들이 제각기 자신들의 선거 전략전술상 유리한 지역을 찾아 철새처럼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이다.



  울산토박이 이철의 심중은 요즘 매우 착잡하다. 80년 해외건설현장을 끝으로 귀향한 후에는 조용히 후학 외국어교육과 기독교 사회봉사 활동에 전력하면서, 고향 울산의 시대적 소명인 민주화와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기본권의 요청을 외면 할 수 없어 이들과의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이철의 고민은 먼저 몇 달 후 닥쳐 올 총선을 앞두고 고향 중구 토박이로서 군사독재 정권의 실세 민정당 거물 김호와 맞싸울 야당의 후보가 전무하다는 급박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였다. 평소 지인들과 혹은 종교 사회단체 지도자들과 밤새워 토론하기도 했으나 누구도 어떤 시원한 대책을 제시하거나 결론을 도출 할 줄도 몰랐다.



  이즈음 미도 그릴에서 울산의 노동운동과 공해문제에 깊이 관여하던 일단의 비판적 신진 문학인들로 구성 된 작가회 회원들의 시화전이 열렸는데 초기 민족작가회의에 좌장격인 이준의 강력한 권유로 이철도 시화전에 동참하여 “울산”이라는 제목의 시 한편을 낸다.




“누가 뭐래도 나는 울산이 좋다.”




누가 뭐래도 나는 니가 좋다.
누가 다 으깨어 먹고 짓밟아 버려도
난 널 잊을 수가 없구나
낳고 기르고 사랑도 해준
살기 좋고 인심 좋던 고향 땅이여
다 집어삼키고 껍질마저 뭉개져도
차마 널 버릴 수가 없구나



팔동 딸기밭의 큰 애기들
용금소 밤 물소리 더욱 처절한데
금모래로 이 닦고 고무신으로 은어 잡던
미꾸라지 통발도 사라져버린
지금은 악취 나는 도랑물에
시커멓게 죽어 가는 태화강



공단을 건설하는 기술기능인 되어
그래도 널 찾아 왔잖니
태화강의 기적소리 들으며
석유화학 제품에 배도 만들며
자동차도 수출하고
공해도 수입하고,
100억불 수출 탑에 처용무 두둥실



술집도 여자도 흥청대는 역신들의 개운포
하지만 누가 감히 네게 돌을 던지랴
60만 시민의 보금자리이며
그 자녀의 고향이 될
영원한 내 마음의 고향이여
누가 뭐래도 난 니가 좋다.




  청년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민주화운동의 열기는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고 단결 된 노동자들의 힘은 이제 울산의 시가지까지 몰려나와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는 가열 찬 투쟁이 계속되는데, 하루는 일단의 부산 서구의 김영삼 민주야당 당수를 추종하는 고교동창생들이 찾아와서는 출마 의사를 타진하며 이렇게 제안한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아무래도 자네가 이번 13대 울산중구에 국회에 출마해야 할 것 같은 데, 그런 어렵고 무모한 선거전에 뛰어들어 거물과 싸울 필요가 있나? 그런 선거 치룰 돈 있으면 5억만 내라. 그러면 김영삼의 민주여당에 전국구 후보로 확실하게 심어주겠다.>



  이철은 펄쩍 뛰면서 <어디에서 헛소문을 듣고 와서 그런 소릴 하나? 나는 출마 할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고 또 그런 돈도 없지만 설령 전국구를 거저 준다고 할지라도 그런 국회의원은 안 한다.>



  그들을 물리치는 이철의 대답은 단호했다.



  4월 선거일이 점점 가까워오자 이번에는 지난 11대 선거에 울산에서 근로농민당으로 출마하여 1등 당선의 영광을 안았던 이규가 한번 만나자는 전갈을 보내 왔다.



  기다리고 있다는 남구의 큰 여관방에서 방문을 들어섰을 때 방안에는 담배연기로 꽉 차 숨쉬기조차 힘들 지경인데 목이 꽉 잠긴 이규가 반갑게 손을 내밀면서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제안을 한다.



<내 여론 파악을 해보니 이번에는 이동지가 아무래도 중구에 야당 후보롤 출마하는 것이 적격인 것 같아. 나는 그동안 김종필 총재를 모시고 신공화당으로 이곳 울산 중구에서 출마를 준비해 왔는데 아무래도 서울로 옮겨야 할 것 같아. 아직 당을 정하지 않았으면 우리 울산공단을 건설한 박통과 이후의 상징적인 신공화당으로 출마하는 것이 어떻겠소?>



  매우 조급한 듯 이철의 답변을 재촉한다.



<아직 출마를 생각해 보지도 결심 한 바도 없습니다. 단지 민주화를 추진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민주화를 외쳤던 정치인들이 모두 타처로 옮겨가며 고향동리 중구에 야당이 사라져 버린다면 이것만은 다시 한번 심중히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언제든지 출마의 의향이 굳어지면 그때 다시 한번 만나 입당문제를 의논하기로 합시다.>



  이철은 이규가 장기 투숙한다는 남구의 큰 여관방을 나선 후에 걸어서 태화강을 넘어 태화동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3월의 밤, 이철은 초봄의 신선한 바람을 폐부 깊이 들어 마시며 무언가 거역 할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을 느낀 듯 비장한 결의에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당도하기가 바쁘게 언론사 등 여러 곳에서 출마의사를 타진하는 전화와 함께 무소속 출마인가 아니면 어느 당으로 가는지를 묻고 있다.



  잠시 후에는 남구에 신공화당 공천을 확정 받았다는 이후의 조카 되는 중앙정보부 출신 이복으로부터 또 함께 같은 당으로 출마 할 의사가 없는지를 전화로 물었다. 종일 정치 행보에 관한 질의와 정치꾼들의 방문에 시달리고 있는데 오후에는 울산의 정통 민주야당 심완이 전화로 만나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철은 또 쾌히 약속을 했다.



  그랜드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대뜸 이철을 보고



<이형 울주군에 우리당으로 출마 할 의사가 없겠소?>



  너무나 어이없는 뚱딴지같은 질문이라는 듯 예리한 이철은 그 큰 눈을 더욱 반짝이면서



<중구 토박이인 제가 출마를 하면 중구에서 나오지 뭣 하러 울주군에 갑니까? 아직 출마 할 결심을 굳힌 것도 아니고..>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대답을 하니



<아 우리당은 울산 4개 지구당에 이미 후보가 확정되었는데, 혹시 이 동지가 출마하려면 당도 인기가 있는 정통 야당으로 나오고, 또 거물과 힘겨운 싸움을 하느니 가능성이 있는 울주를 천거하려는 뜻이니 오해는 없기 바라오.>



  이렇게 대화는 간단히 끝이 났다.



  사실 이왕 전통 야도 울산에서 국회의원에 출마를 하려면 조선팔도에서 직장을 따라 울산에 다 모여 사는 노동자와 기회의 땅이요 지금 한창 격렬하게 불붙고 있는 노동운동의 산실, 울산에서는 신공화당 보다는 민주야당 심완의 당으로 출마하는 것이 백 번 유리했지만 아직 공탁금도 준비하지 못한 이철의 형편으로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래도 당시 인기 야당 공천을 받으려면 오늘의 인기 지역당 공천헌금처럼 몇 억원은 안돼도 가난한 야당에 단 몇 백 만원의 정치헌금은 내어야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물론 이때 심완이 울주를 권고 한 것은 순수한 정당 공천을 제안 한 것이었지 정치 초년생인 이철에게 단 몇 백만 원이라도 돈을 바라고 제안한 뜻은 전혀 없었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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