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앙에 거물 모셔오기

울산포스트 | 기사입력 2005/08/08 [20:51]

<3> 중앙에 거물 모셔오기

울산포스트 | 입력 : 2005/08/08 [20:51]

  지금도 한국의 실업계 고등학교는 어디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1960대 까지만 해도 당시 울산군에서 유일무이한 실업계 최고 명문임을 자랑하던 울산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서울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니 어쩌다 몇 년 만에 한둘이 서울대에 합격을 하면 천재소년이니 수재라고들 온 읍내가 떠들썩했다.



  1952년 울산농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곡 출신의 김호는 어려운 집안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대학에 응시하여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으니, 그것도 서울대학에서 제일 경쟁률이 높은 법과대학이라 이미 판검사는 예약해 놓은 듯, 시골 동리에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비록 면 서기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6.25사변 직후 밤마다 울산 인근 무룡산에서 출몰하며 양민을 괴롭히던 북한공산군 잔당인 빨갱이들의 총에 맞아 억울하게 돌아가시면서 갑자기 가세가 기울긴 했지만, 서울법대의 합격은 천곡 동리의 경사 일뿐만 아니라 울산읍내 유일무이한 공립 농고인 울산농고를 통해 온 울산읍내에까지 화제가 되었다.



  6척 거구에 농촌출신다운 강인한 정신력으로 만난의 역경을 헤치고 어렵사리 학문에 정진하던 김호는 서울법대 4년을 졸업 할 즈음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사법고시를 패스하기 위해 전심전력 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그에게 더 이상 행운을 안겨다 주지 않았다.



  그 후 군 입대를 수차례 연기하면서까지 모든 것을 바치며 고등고시에 매진했던 김호는 결국 고향집 안 밖의 모두가 기대해마지 않았던 판검사의 꿈을 접어야 할 연령에 이르렀고, 이미  몇 차례 군 입대를 연기하다 보니, 병역 기피자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뭇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던 서울법대 출신이 결국 고시에 낙방하고 실의에 젖어 고향 시골집을 찾아 낙방거사로 소일 하고 있을 때, 하루는 일가 한 사람이 찾아와 안방에서 어머니와 은근히 혼담을 꺼낸다.



<그래도 서울법대 출신인데 고시에 패스 못한다고 출세를 못하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걱정일랑 접어두라고. 울산에 이 아무개는 지방대학도 겨우 나오고도 울산 이씨라고 서울에 이후가 데리고 가서 청와대에 집어넣었단다.>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에 울산 웅촌 출신의 이후는 사실상 이 나라 권력의 실세요 2인자였다. 권력 서열상 형식적으로는 국무총리가 있긴 했지만 거의 의전용 로버트 총리에 불과 했고 박통의 뒤에는 항상 실세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한 이후가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물론 당시 박대통령의 조카사위인 김필과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다툼이 치열 했지만 이후는 후일 낙향하여 무소속으로 10대 국회에 출마하여 힘겹게 당선 될 때까지 언제나 대통령의 분신처럼 처신해 왔다.



  김호의 어머니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그래 나도 소문은 들었다마는 우리야 원체 그런 빽이 있어야제, 지거 애비라도 살아 있었다면 다 연줄이 닿을 텐데...>



뜸을 제법 들인 중매쟁이가 이미 작정을 하고 온 듯 드디어 중대 발표를 한다.



<그래 댁에 아들이야 서울법대 학벌에다 덩치 좋고 인물 좋은데 어데 누가 조금만 밀어주면 또 큰일 할 수 있을낀데, 내 좋은 집안에 처녀 하나 중신할까?>



<어데 좋은 규수가 있던교?>



  김호의 어머니는 은근히 아까운 아들이 고시에 떨어져 실의에 젖어 집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도 애석하거니와 장가 갈 때가 지난 노총각의 혼기까지 놓칠까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 반색을 하며 물어본다.



<있고말고. 내 꼭 당신 아들하고 천생연분이 될 부잣집 처자를 하나 알고 있지. 서울 이화여대 나오고 농소동네에서는 최고 대농가 집안에다 지거 어른은 바로 이후의 집안에 행세하는 어른이라 마 장가만 가면 좋은 일이 있을끼라.>



  비록 공무원으로 계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빨갱이 총에 맞아 억울한 죽음을 당한 후 가세는 기울어졌으나 농소면에서는 다 알만한 집안인 데다가 원체 당사자가 훤칠한 체구에 서울법대 출신이라 처녀 집에서는 딸이 체격이 외소하다는 것 빼고는 별로 흠 잡을 것이 없어 선을 한번 본 후에는 곧 날을 잡아 혼례식을 올리게 되었다.



  모파상은 “여자의 일생”에서 인생은 그렇게 행복하지도 않지만 또 그렇게 불행하지만도 않다"고 했는데, 결국 살다보면 인생은 어떤 면에서는 모두 공평하다. 신은 한 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행복을 한꺼번에 다 가져다 주지도 않지만 또 불행만을 안겨주지도 않는 속성이 있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서울법대를 나오고도 악전고투 했지만 고등고시에 연거푸 낙방한 불운한 사나이에게도, 결혼을 하자마자 행운의 여신이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 직 후 중매쟁이의 말마따나 울산 이씨 대농가의 농소 제일 부자라 했던 처가에서 힘을 입었음인지 곧 이후의 천거로 청와대에 들어간 김호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승승장구하며 공직생활을 원만히 수행하고 있는데 다시 10.26사태가 발생한다. 격변하는 한국정치의 와중에서도 비록 한때 낙방거사가 되긴 했지만 서울법대 출신의 실력도 갖춘 데다 거구의 점잖은 인품에 어울리게 잘 처신했음이지, 신군부의 전두한 정권의 눈에 띈 결과 이후 절대적 신임 받고 곧 경기도 지사로 영전 되는 행운이 겹치며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된다.



  최근 “울산의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 누구냐?”고 며칠 전 한 언론사에서 울산시민들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해 보았더니 비록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오래도록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이후락씨가 단연 으뜸이었고 그다음이 16대 국회의원 4선의 임기를 다 못 채우고 병마로 고인이 된 김태호씨였다. 역시 거물 권력자들의 당대의 위력도 대단했지만 그 인기와 여세는 인정이 메마르고 급변하는 세태에도 여전히 무시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지속 되는 것 같다.



  울산의 이후가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 시에는 혹자는 중정을 울산정보부라고 불리었을 정도로 울산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들락거렸다. 정식 중정 직원으로서 울산 출신근무자도 많았지만 방문객 또한 끊이지 않았다. 울산지역의 유지들을 앞세우고 정치브로커에서부터 건달들까지 언제나 휴게실은 울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1984년 12대 총선이 다가오자 울산의 정치 풍토도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역의원들이 그동안 특별히 해 놓은 일도 없었을 뿐 아니라 정치력 또한 부재라 하여 그동안 정치규제법에 묶였던 야당의 투사들도 대부분 풀려났다, 지난날 이후와 같은 거물의 그늘에서 그동안 권력의 맛을 들이고 그 향수를 느끼기 시작한 지방 토호들과 정치 건달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 했다. 바로 이후 다음의 울산 출신 집권세력인 거물 권력자의 행방을 찾아 모두 서울로 향한다.



  서울에 도착 하자마자 지난 시절 이후를 추종하던 여권의 권력지향적인 해바라기성 정치 패거리들은 언제 알았는지 아니면 약속이나 한 듯이, 다시 울산출신 경기도지사 김호를 찾아 경기도청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때쯤 신군부 전두환 정권은 지난 11대 선거는 급한 김에 야당 거물들을 정치규제법으로 묶어 놓고, 급조한 민정당에 대부분 지방의 재력가나 권력에 유착된 지방 토호중심의 유력 인사에게 공천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보다 강력하고 효율적인 국회를 운영 장악해 나가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자기 사람을 심을 작정으로 중앙의 고위직 측근인사들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김호의 울산 출마가 기정사실화되기 시작하자 울산의 모든 조직과 관권은 일제히 재선의 가능성을 부지런히 타진하고 다니던 고원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권력지향형의 정치 패거리들의 동작은 민첩했고 집권 여당의 공천을 받아 2선에 도전하려는 고원은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 했다. 울산사람(읍네 토박이)이 울산사람 안 키워준다는 정설이 다시 한번 입증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흡사 수십억의 선거 돈을 단 며칠 사이에 처리해 치울 수 있을 정도의 노련한 정치꾼들은 지연 학연 혈연을 통해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2대 출마를 결심 했던 여야의 정치 지망생들도 삽시간에 서울의 거물 정치인이 내려온다고 하니깐 움직임이 혼미해 지는 가 했더니 어느 틈엔가 모두 종적을 감춘 듯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대세는 기울어진 듯 정치 판도는 정해져 갔다. 지난 선거에 동정표를 받아 1등으로 당선 된 근로농민당 총재 이규가 재선을 노리면 특유의 언변으로 끝까지



<사자는 죽어도 풀을 먹지 않는다.> 라며 이번에도 경남 최고의 득표로 당선 되고야 말겠다고 기세를 돋우었고, 좀체 물러서려 들지 않는다.



  가까스로 정치규제에서 풀려난 최우도 역전의 야당 투사답게 출마의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태화강변 고수부지에서 새로운 정통 야당의 기치를 내 걸고 창당대회를 하는 자리에는 그와 울산 야당 정치를 하며 수난을 당했던 동지들과 의리의 사나이들이 속속 모여들긴 했으나, 이미 정통 야당의 핵심 그룹은 심완의 캠프로 떠난 뒤였다. 그러나 최우의 패기와 정치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특유의 호소력 있는 연설은 12대 선거의 다크호스로써 이변을 예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집권 여당의 공천을 받고 막강한 배후의 권력과 조직력을 갖춘 김호로서도 정치 초년생임은 어쩔 수 없는지 아연 긴장, 심완과 함께 최우의 정치적 향배를 예의 주시하게 된다.



  대현 배밭집 아들 심완은 그동안 십수 년 동안 서울 종로에다 치술령 불고기 식당을 차려놓고 적자를 봐 가면서 얼마나 많은 울산사람들을 대접했으며 또 김영삼의 정치 문하생으로 최우와 정치수업을 함께 받으며 오랜 인연을 맺고 동고동락하며 지내 왔던 처지가 아니었던가?



  그가 오래 공들여 심어 놓은 울산사람들을 믿고 11대에 뛰었으나  민심이 천심이라 이미 동정표로 몰려가는 선거바람을 도저히 어찌 할 수 없어 지난 선거에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절치부심하여 이번에는 단연코 당선되고야 말리라고 강철 같은 결심을 하고 지난 4년을 마당발로 누볐듯이 12대 총선이 임박한 지금도 부지런히 지역구를 누비고 있다.



  비록 금배지는 못 달았지만 지난 4년 동안 정통야당의 지구당 위원장으로서 울산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현역 의원 보다 더 열성적으로 일했다.



  중앙시장에서 불이 났을 때도 제일 먼저 현장에 달려 온 사람은 심완이었다. 경찰이 화재현장을 보존한답시고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 할 때였다. 심완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불탄 점포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다. 물론 경찰이 앞을 막아서며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냥 물러 설 심완이 아니다.



<나 심완 민주야당 위원장이요. 왜 못 들어가게 막고 이러시오, 비키시오>



  신참 경찰관에다 야당 위원장을 우습게 볼 때였다. 인상도 양순하게 생긴 신비형의 별 볼일 없고 힘도 없는 정치인이라 생각했는지?



<왜 나가라 하는데 자꾸 야단이야, 이거 자꾸 공무방해 계속 할 거야?>하면서 밀어내다가 그래도 물러서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법석대는 소란 속에 그만 발길질로 냅다 심완의 배를 차 버린다.



  이 이야기는 오래 동안 울산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하며 나중에는 경찰관에게 뺨까지 맞았다는 정치 비화를 남기며 12대와 13대에 연거푸 국회에 당선 된 후일까지 재미난 정치야사로 침소봉대 되어 전해져 내려왔다.



  한번은 태풍이 불어 옥교동 세치동네가 물 속에 잠기게 되었다. 그 원인은 울산시에서 제때 세치 배수장수문을 닫고 물을 펌프로 뽑아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완은 끝까지 고장난 펌프를 방치한 책임을 묻고 중앙당 총재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여 기어이 울산시장을 경질시키는 야당 투사다운 끈질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부지런함은 바로 선거전의 표로 연결 되었기에 마당발이란 별명을 얻은 심완은 결국 12대부터 승승장구 울산의 정치가도의 선두 주자로 달리게 된다.



  12대 선거판은 신군부의 최고 선거 전략과 절대적인 지원책에 힘입어서인지 이미 초반부터 이후에게 지지했던 세력들이 모두 민정당의 김호 후보 쪽으로 물밀듯이 밀리고 나머지 일부 야당 표와 부동표심이 이번에는 부지런히 금배지도 없이 지난 4년을 열심히 뛰었던 심완에게로 쏠리고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다크호스 최우가 초반부터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고 추락하는 현상이 뚜렷했으니 그것은 바로 언양 출신의 정치 지망생이요 야당 동지였던 권술 형제의 단상 난동이었다. 강남국민하고 유세장에 모처럼 만 명 가까운 유권자가 모여 정치 해금된 최우의 열변을 경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권술 형제가 단상에 뛰어 올라 와서 최우의 멱살을 잡고



<전국구 국회의원 자리를 주겠다고 가져간 내 돈 500만원 내놔라.>하면서 욕설이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지니, 사실여부를 확인 할 겨를도 없이 돈 받아먹은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이 날로부터 최우의 선거 판세는 끝장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개표결과는 여당인 민정당의 김호의 압승에다 예상 했던 데로 민주야당의 심완의 신승으로 끝이 났다.



  이 날로 자존심이 상한 최우는 정통 야당의 자리를 심완에게 미련 없이 넘기고



<울산을 향해 오줌도 안 누겠다.>고 하면서 선거구를 부산으로 옮기는 결단을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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