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현 배밭과 치술령

울산포스트 | 기사입력 2005/07/30 [11:10]

<2> 대현 배밭과 치술령

울산포스트 | 입력 : 2005/07/30 [11:10]

 



흔히들 이승만을 외교의 천재요 인사엔 등신이라 했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18년 동안 그의 용인술(用人術)은 가히 귀신같다 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장기 집권을 누리다가 무참히도 마지막 그가 가장 믿고 중책을 맡긴 동향 친구이자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의 총에 맞아 비명에 가버리자 그간의 평가가 무색하게 되었고 사후 그의 업적을 평가하는 자리에 다시는 용인술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지 않는다.



  그러나 혁명 초기에 그와 울산 출신 이후락 비서실장의 절묘한 운명적 만남은 혁명과업수행에 가속기를 달듯이 가히 그의 분신의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측근은 전해주고 있다. 그러기에 결국 박정희는 신임 두터웠던  HR을 은밀히 북한에 특사로 보내어 김일성을 만나게 하고 역사적인 7.4 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이후락 비서실장이 대현면 고사리에서 1962년 울산공업센터의 기공식장에 참석하여 "보릿고개를 없애고 신라의 번성을 되찾겠다"고 선언한 이 날이 바로 울산공업센터에서부터 역사적인 국가적 재건사업이 시작되었던 날이요 우리 민족중흥의 기틀을 마련할 새로운 기운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던 날이었다.



 울산이 살기 좋고 인심 좋은 고장이라고 전국에 소문이 났던 이유도 기실은 해산물과 농산물 등 먹거리가 풍부했고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이다. 태화강 100리 굽이치는 기름진 들녘에서 실어 나르는 농산물과 동해안 청정 해역의 해산물과 장생포 고래잡이가 불과 인구 3만의 한적한 읍내였으나 이미 "살기 좋고 인심좋기로"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고 특산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울산읍내와 고래잡이로 번성했던 장생포 항구의 중간지점쯤 여천고개에 이르면 여기서부터 넓은 언덕으로 펼쳐지는 대현면 배밭은 그 입지적 조건부터 기름진 옥토에 해풍을 받으며자라는 배 생산단지로 적지여서, 대현배 하면 그 크고 단물이 베어나는 맛좋은 전국 최고의 배 생산 단지로 이미 나주배를 능가하여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석유화학공단 건설에 참여하는 외국인들을 만나면 한결 같이 울산의 크고 맛좋은 대현 배 맛을 칭송하면서 귀국 할 때는 꼭 한 상자씩 사가지고 가서 가족들에게 귀국 선물을 하겠다고 달고 물 좋은 대현배 맛에 원드풀을 연발했다.



당시 장생포 고래배를 가진 선주를 울산 제일급 부자로 쳤는데 바로 언덕 너머 대현면 배밭 주인들도 이들 못지않은 부농으로 울산의 배조합을 만들어 한적한 농촌지역의 경제력을 좌우하며 전국적으로도 과수재배에 관한한 울산배 하며 최고최신 신영농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대현면 배밭집 아들 심완을 처음 만난 곳은 서울의 "치술령"이란 옥호를 단 그가 운영하는 유명한 불고기 식당에서였다. 이 한옥 식당은 이미 재경 울산 향우들 뿐만아니라 종로 바닥에 내노라 하는 특별히 정치인들 사이에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최우가 다혈질의 투사형이라면 함께 김영삼의 가신으로 혹은 식객이 되어 출입하던 심완은 바지런한 선비형의 신사였다.



치술령이 울산 사람들 특히 정치 지망생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을 때, 심완은 배 밭집 아들의 경제적 여유와 특유의 친화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장차 고향 울산으로 내려가서 정치를 시작 할 만반의 준비를 하며 수많은 고향 울산 사람들과 교류하며 벗으로 혹은 동지로 만드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기에, 이때부터 이미 실력을 쌓은 마당발이라는 후일의 별명을 달고다니게 되었다.



물론 이 식당에 와서 불고기를 잘 먹고 가는 젊은이들 중에는 대부분 돈을 내지 않거나 혹 돈을 내려고 해도 심완이 이를 적극 만류하여 비록 식당에 손님은 끊이지 않았지만 적자를 면치 못했던 이유도 돈벌이 보다는 후일을 위해 좋은 인심을 심고 있었다.



  소대가리라는 별명을 가진 이숙은 울산농고를 졸업하고 한동안 집안 농사일을 도우며 선거 때면 열혈의 청년 투사로 탄압 받는 야당 후보를 위해 제 몸을 돌보지 않고 힘써 도왔기에 당시 최우 의원과 심완에게는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숙이 다시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로 올라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철은 이미 대학 3학년이었는데, 어렵사리 그의 소재를 찾고 연락이 되어 명동 학사주점에서 모처럼 만나 회포를 풀고 헤어지면서



<다음에는 내가 잘 아는 치술령이라는 식당에 데리고 가서 멋진 선배를 한분 소개 해 주겠네.>



<그래 너 울산촌놈이 서울에 온지 몇 달 되었다고 벌써 종로통에 잘나가는 불고기 식당을 다 아냐, 그래 다음에는 니 따라 그곳에 한번 가보자.>



  이렇게 해서 그 유명했던 치술령 불고기 식당에서 후일 알게 된 중학교 대선배인 심완과 이철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치술령식당에 들어서니 벌써 초저녁인데 한식 기와집을 개조한 식당 큰방 아랫방에 제법 많은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현관에 들어오는 우리 일행을 쳐다보면서 저만큼 큰방에 손님과 마주 앉아있던 심완이 벌떡 일어나며 반갑게 맞는다.



<어 이숙 자네 서울에 왔으면 진작 날 찾아 올 것이지 왜 이제 나타난 거야? 그래 어떻게 된 거야 이 답답한 친구야>



<죄송합니다. 사실 집안 형편을 보면 도저히 서울에 이렇게 올라와 대학에서 공부나 할 처지가 아닌데 눈 딱 감고 한분 어머님께 조금만 참으시라 설득을 하고 농사일은 동생에게 모두 다 맡기고 억지로 밀어 붙였습니다.>



<좌우간 축하한다. 옆에 분은?>



<네 안녕하십니까 심 선배님? 이철이라고 합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으나 진작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우린 치술령 주인 내외가 차려주는 숯불에다 불고기를 부지런히 구워먹으면서 그동안 못 다한 밀린 이야기도 실컷 했다.



<내가 서울에서 고향 울산으로 정치를 하러 내려갈 준비를 오래 전부터 했다. YS의 가신으로 이미 10년이 되었으니 이젠 때가 되었는데, 아마도 나만큼 많은 사람을 알고 또 울산에 많은 동지를 심어 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좌우간 곧 내려 갈 터이니 이숙 자네 같은 의리의 사나이와 친구라면 이형도 날 좀 도와주시게>



<네 잘 알겠습니다. 꼭 결심한 바 꿈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모처럼 맛본 울산 불고기에다 정종까지 제법 마셨으니 기분도 얼큰한데, 이윽고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 쪽으로 나가려 했으나 심완이 재빨리 나서며 한사코  돈을 받지 않고 만류하며 오히려 자주 들리라고 당부까지하면서 현관까지 따라 나와 작별의 인사를 한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선배 중에서도 참 괜찮은 분이다. 그의 꿈과 야망이 언젠가 울산 땅에서 꽃필 날이 있으리라 예견하면서 우린 종로 대학로를 따라 한참 걷다가 버스정류장에서 각기 집으로 헤어졌다.



    



 (민주화의 봄바람)



79년 10월 쿠웨이트 샤와파트공사 현장으로부터 1년만에 귀국하는 KAL 기내에는 사우디, 아부다비 경유 비행이라 수많은 한국의 기술기능인들의 열기로 꽉 찼다, 이제 막 랜딩을 시작한 비행기는 그리운 조국 김포공항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하더니 잠시 후 우리 일행을 김포국제공항에 내려놓는다.



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공사 후에 두 번째 중동 해외 건설 현장이었던 쿠웨이트에서 1년간의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이다.



  본사에 들러서 귀국 보고를 하고 잠시 휴가를 얻어 울산으로 돌아와 고향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그 날 아침 일찍 정확히 27일 눈을 뜨자마자 대문 앞에 떨어져 있는 신문지를 주워보니 전면 탑(top)으로 "박정희 대통령 서거"라는 글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다. 엄청난 사건이다. 너무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동향의 친구이자 오랜 정치적 동지이자 신복이기도 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시해 된 것이다.



  군사독재 정권 18년의 종지부를 찍는 대사건은 한국 정치 사회에 거대한 회오리를 일으키며 격변으로 몰아넣고 있다.



  합천 출신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라는 인물이 서서히 한국 정치무대의 중심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난국을 헤치며 위기사태를 수습하고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찾아가자 전두환은 소위 통대들의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격렬한 대모와 광주사태까지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하는 한편, 드디어 대부분의 야당 정치 거물들을 정치정화법으로 묶어 피선거권을 박탈한 가운데 제11대 국회의원 선거가 80년 4월에 실시되었다.



  울산시에서 2사람을 뽑는 중대선거구제 하에 7-8명의 후보가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나서는 가운데 집권 민정당 1사람과 나머지 7명도 제각기 정통 야당의 맥을 잇는다는 신당 혹은 군소정당에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고 민심은 현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에 등을 돌리고 야권에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는데...



  과연 민심은 천심이라고 국민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그 여망에 호소 할 수 있는 전통적인 야당의 맥을 연결지어 줄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을 찾고 있다. 그래도 역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후보는 울산 읍내 초등학교 출신으로는 정부 수립 후에 최초로 여당 후보로 출마 하였다 하여 최고 부호의 손자인 고원이 막강한 재력과 조직력으로 대세를 굳힌 듯 하다.



  오래 때를 기다리며 준비해 왔던 심완도 드디어 갈고 닦은 정치적 야망을 펼치며 새로운 민주 정통 야당의 맥을 이었다는 신당의 기치를 들고 고향 울산의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또 하나 호소력 있게 시선을 모으며 범서 출신의 이정이란 젊은 정치 신인도 특유의 달변으로 동정표를 모으고 있었다. 그는 이미 지난 10대에 출마하여 거물 HR을 향해 맹공을 퍼부으며 ‘사자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는다.’란 명언을 인용하며 용기 있게 잘 싸웠기에 인지도에도 어느 후보보다 앞섰다.



  또 <초등학교 교사인 우리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내 선거 공탁금을 마련하고 옥교동 시민극장 뒤에다가 천막을 치고서 선거를 치른다.> 는 동정표 전략으로 나갔는데 동병상린인지 결국 역전시장 상인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한편 전두환 총재의 여당인 민정당의 공천을 받고 출마한 고원 후보는 막강한 집권 세력의 비호를 받으며 엄청난 자금력을 동원하였기에, 평소 울산 변두리 시골 출신으로 서울에서 출세한 거물들을 옹립하며 참모로 일했던 울산읍내의 내노라하는 기름종이들과 정치 건달들도 모처럼 대양 호텔로 고원의 선거 캠프로 몰려들며 금권선거의 진수를 유감없이 맛보고 있었다.



  이즈음 유세장에서 특유의 달변가인 한 야당 후보는 <요즘 울산시내에는 똥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심완은 오래 때를 기다리다 별로 시기가 부적절한 선거전에 임했음을 감지했음인지 나름의 정통 야당의 모든 인맥과 공들였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정치 정화법에 묶여있는 최우의 정치적 계승자로 그 공백을 메우려 특유의 마당발로 시내를 샅샅이 누비며 호소를 했으나 초반의 기세가 점점 시들해 지는 모습이 점차 선거판세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의 가장 큰 약점은 아무래도 첫 출마의 서투른 모습을 숨길 수 없었으며, 정치적 쇼맨십과 야당 투사다운 언변이 부족했다.



  선거전은 점차 현 신군부 세력을 강력히 비판하며 최우처럼 맞서 싸우는 투사형의 자리를 메우거나 아니면 동정표 쪽으로 표심이 기울어져 가는 경향을 뚜렷이 감지할 수 있었다.



  결국 막판 판세는 동정표 바람이 11대 울산 선거를 휩쓸기 시작 했으며 그래도 끝까지 막강한 재력과 권력이 뒷받침이 되어 조직력을 총동원함으로써 집권 여당의 프레미엄으로 그나마 나머지 부동표까지 흡수하므로 개표 결과는 이름도 없는 신당 근로당의 총재가 된 이정이 1등으로 일찌감치 당선권을 확보 했고 나머지 2위는 집권당 고원이 은배지로 가까스로 당선 되었다.



  그래도 고원이 국회의원에 당선 된 것은 울산읍내 토박이면서 울산초등학교 출신으로는 유사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국회의원에 출마한 것도 전무후무였으며 이때까지 울산 읍내 본토에서 당선 된 사실은 울산 선거 역사상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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